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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pisces 삶의 기록

뭐가 자라고 있다.

by MIA_LeeQ 2019. 9. 25.

한달만에 동거인이 돌아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공항에 픽업하러 가는 내내 설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떠들었고, 집에 도착해서는 바로 손발 닦고선 남아있던 맥주 한캔과 소주를 섞어서 나눠 홀짝거리며 짐을 풀고 그간의 이야기를 풀었다.

 

엄마. 나의 좋은 친구이자 멘토. 꼰대기질 없고 소녀같은 분. 여전히 삶의 열정과 소소한 삶의 기쁨을 누리기 바쁜 이벤트박. 서프라이즈를 워낙 좋아하는 귀여운 사람. 의리있고 내가 손해 보더라고 남에게 의지하기 싫어하는 대장부 기질이 다분, 그러나 씩씩한 외관과는 달리 감정적으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여린 마음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삶을 일궈나가는 고독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고. 

 

가끔은 그녀가 없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20대 중반 이후 내 삶에서 정서적이고 물리적인 영향관계의 많은 부분 거둬지긴 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그러지 않을까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올해 강력하게 든다. 내가 어제 계속 사용했던 단어가 "야성적"이라는 표현이었는데, 정말 올해 들어서 나는 그렇게 바뀌었다. '누구든 건들이면 가만 두지 않을꺼야'와 같은 상태랄까. 그리고 '한번 해보지 뭐, 별거 있겠냐'라는 다소 "공격적인" 마음가짐과 더불어 내 독자적인 삶과 판이 만들어지고 있고, 나는 그 쪽으로 계속 이동 중이다. 엄마도 한 때 그러한 시기를 보냈지. 나보다 더 일찍. 거기서 실패하고 많은 좌절과 주의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낸 세월이 있었던 거고. 나도 나의 방향성에 대해 잘 모르겠다. 언제가는 뒤돌아 보며 이 모든 과정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이 다가온다면, 나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의 모든 방향 설정에 있어 논리적인 이성보다는 그저 감으로 판단하는 삶을 살았고, 역시나 지금도 내가 끌리고 좋아하는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안정적이고 한국에서의 노멀한 삶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의 형식을 택하고 있고, 그저 지금의 재미를 쫓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서로를 존중하고 좋아해주는 동료들을 만들고 있고,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으니, 결국 엄마가 일궈놓은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거지. 물론 교차점은 평생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특히나 정신적으로 교감이 되는 관계라는 건 맞다. 단순히 물리적인 엄마-딸의 관계는 아니라 영적으로 통하는 관계. 좀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찾은 몇 안되는 소울이 연결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별준비를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서글퍼진다.

 

사실 어제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를 바라보는 내가, 나의 시선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두달 사이 광주를 오가며 환경의 변화를 겪고, 얽히고 설킨 관계에서 오는 많은 일과 또 감정들을 맞닥들이며 나의 어딘가에서 작은 싹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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