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높은 굽을 신었다. 이동하는 한시간 정도 사이에 물집이 잡히고 피부가 쓰리더니, 목적지에 도착할 때 즈음엔 이미 터져서 피부 안에 속살이 보이는 지경이 되었다. 아파하는 나를 위해 밴드를 사다 준 MJ를 보면서 9-6 생활을 하던 회사원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에는 이벤트가 종종 있었고, 그런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높은 굽을 신어야만 했었다. 물론 누가 시킨건 아니지만 그런 자리에 어울리는 그런 룩에는 당연히 신어야만 할 것 같은 신발이 있다. 행사가 끝나면 아픈 발을 부여잡고 그런 생각을 했던거 같다. "이 신발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 이런 자리도 불편하고 싫어. 이 곳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 투성이고..." 어린 마음에 한 투정같은 생각이었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20대와 30대를 통틀어 나에게 매우 중요한 감각이었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하는 것들을 20대 때는 최대한 회피했고 30대때는 용기를 내서 여러 경험을 접하면서 아닌 것들을 제거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로소 나다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회사를 나오고 나서 프리랜서 하면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MJ를 만나면서 조금 더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나는 높은 굽이 안 어울리는, 40대를 앞둔 꼬꼬마지만, 이제는 신발 탓을 하지는 않는다. 내 자리를 찾고 있다는 감각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고, 그래서 가끔 다른 자리에 가서 불편하다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더라도 같이 찾아볼 수 있어서 좋은 그런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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