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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구절들

포스트크리에이터

by MIA_LeeQ 2020. 2. 10.

강수미, <포스트크리에이터 : 현대미술, 올드 앤 나우>, 그레파이트온핑크, 2019 

 

 

p.28

티노 세갈 Tino Sehgal 의 작품은 국제 미술계와 평단에서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요한 특징인 '지적 게임'과 '시각적인 것 너머의 미학(담론가능성)', '수행성'과 '관계 지향성', '관계 참여'의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p.33

안네 임호프 Anne Imhof 의 <파우스트>(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품) 같은 퍼포먼스는 그 시사성, 즉흥성, 감각적 이질성, 지적 논쟁의 잠재성, 시적 형상의 새로움 면에서 17세기는 물론 20세기 말 미술조차 압도한다. 2017년 시점에서, 젊은이들이 "포스트젠더이자 개인화된 행위자"들로서 "이미 이미지(image-reday)"이며 디지털 상품이 되기를 기대하는 자신의 세대를 배역 없이, 각본 없이 실행하기 때문이다. 

 

 

pp.54-56

단토의 예술계론이 예술이 무엇이고 예술을 이루는 데 관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편적인 답을 구한다는 점에서 "관념의 예술계"를 전제한다면, 디키의 논리는 "사람들, 아티스트들, 아티스트의 대중(public)으로 이뤄진 [제도적] 세계"를 구체적 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이론가의 논지는 선후관계로 엮인다. 1969년 디키는 단토의 예술계론이 "스스로 예술의 정의를 구성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 시도들이 취하지 않으면 안 될 방향을 암시해 주는 결론들"을 서술했다고 보고, 그 방향을 따라 예술제도론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 방향이란 예술을 '예술계'라는 제도적 틀을 기본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예술계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자격 부여 행위("어떤 인공품을 감상을 위한 후보로서 취급함"), 즉 예술제도적 관습(conventions)과 그 실행의 상호 되먹임(feedback) 과정으로써 정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은 예술계라는 특정한 영역에서 예술제도의 형식과 내용으로 이뤄지는 여러 실천들이며 그 실천들이 곧 예술계, 예술제도, 나아가 예술의 본질을 이뤄나간다는 논리다.   

(...) 정리하자면 '예술계'는 창작, 이론, 감상, 교육, 행정제도, 규칙, 관행, 역사과정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유지, 변화하는 하나의 세계다.

 

 

p.61

컨템포러리 아트 비평의 현황과 난점에 대한 글

https://www.e-flux.com/journal/50/59990/the-device-laid-bare-on-some-limitations-in-current-art-criticism/

 

The Device Laid Bare: On Some Limitations in Current Art Criticism - Journal #50 December 2013 - e-flux

www.e-flux.com

 

pp.70-71

1975-1984, 1985-1994, 1995-2004, 2005-2014  이렇게 10년 단위로 잘라 빅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압도적으로 많이 인용된 저자 1위는 칸트 Immanuel Kant 다. 총 996개의 출판물에 인용된 칸트의 미학은 시기별로 118,182,283,413의 피인용 횟수를 보이는데,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수가 높아졌다. 칸트의 미학 이론 중 무엇이 이렇게 시대를 관통해 연구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그 학문적 영향력이 날로 높아져간 것일까. 칸트의 '무관심성 disinterestedness' 개념이 많이 인용되고 참조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학문 체계 및 내용을 갖춘 서양 근대 미학이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은 논제 중 하나가 '미적인 것'이다. 무관심성 개념은 그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이 사적 이익이나 욕구, 어떠한 이해타산이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롭다는 논리를 기초로 한다. 예컨대 '미적인 것의 판단'은 돈, 명예, 본능, 위협, 공포, 거래, 이익, 본능적 욕망 등등에 좌우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쾌/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또 '미적인 것'은 사회적 영향, 경제적 계산, 정치적 고려, 인종적 차이, 종교적 믿음, 실용적 용도 등등과 관계없이 성립된다는 뜻이다. 

    칸트의 미학이 2000년대 들어 연구자들 사이에서 더 큰 참조대상이 되었다는 빅데이터 조사 결과로부터, 동시대 학문 및 문화예술 지형과는 상반된 경향, 이를테면 그에 역행하는 지성/문화 예술의 강한 추세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유추할 수도 있다. 대학의 학과는 물론 사회 전 분야가 상호학제 interdisciplinarity, 다원주의 pluralism, 혼성 hybrid, 융합 convergence을 실행하는 시대다. 때문에 오히려 그만큼의 강도로 우리 정신과 감각의 깊은 곳에서는 모든 이해타산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미적인 것"), 단일 분과, 순수예술, 고유 영역을 회복하고자 하고 또 새롭게 탐색하려는 의미가 커질 수 있다. 

 

 

pp.78-79

학자이자 비평가로서 크라우스의 학술적 의도는 달라진 매체 조건("포스트미디엄 컨디션, post-medium condition")에서 예술가들이 과거 예술의 유선을 어떻게 동시대적으로 재창안(reinventing) 하는가를 밝히는 데 쏠렸다. (...) "매체를 재창안하기(reinventing the medium)"가 그것이다. 예술 매체 또는 장르가 새로운 기술 및 매체조건에 직면해 기존의 것을 '반복(re)'하는 듯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것을 창안(re-invent)'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 '매체의 재창안'이란 새로운 기술 매체의 출현으로 기성의 매체가 '가까운 과거의 낡은 것'으로 밀려났을 때, 그 안에 담긴 역량이 시간적 지연을 통해 오히려 재발견되는 효과 또는 잠복된 가능성의 현재화를 의미한다. (...) 크라우스는 아일랜드 출신 미술가 제임스 콜먼James Coleman의 1980-90년대 영상 미디어 작업에 주목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개념미술을 거쳐 그 시기 필른 슬라이드 영사기가 사진을 시퀀스로 제시하는 일종의 '사진소설/드라마/영화' 작품을 선보였다. 어둠 속에서 슬라이드 필름이 규칙적으로 꺼졌다 켜지기, 명멸(flicker) 효과 반복하기 같은 기계 장치적, 기술적 속성 자체가 곧 작품의 내용이 되었다. 

 

p.80

그린버그의 미술지평 논리로 귀결되는 모더니즘미술의 매체 순수성 또는 매체 특정성을 현대미술사의 비판적 대상으로 삼는 크라우스에게 관건은 매체 일반이 아니라 여전히 미술 내적 역학에 수렴되는 매체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매체란 사진을 포함한 전통적인 매체들(media)-회화, 조각, 드로잉, 건축-중 어느 것도 아니라고 할 때, 그녀의 논범은 일견 사회역사적, 기술적, 경제적 범위를 고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크라우스가 콜먼의 작품을 '매체의 재창안'으로 상찬하며, 그 근거로 콜먼이 "매체 자체의 관습들을 위해 자신의 지지체를 탐색"한다는 해석과 그 탐색의 결과 지지체의 새로운 "구원적 가능성들"이 채택된다는 평가는 역시 미술 내재적이다. 

 

p.81

이 책(크라우스의 <Under Blue Cup>은 미술의 오래된 함수로서 '매체medium'가 기술, 기계장치, 의사소통의 의미를 띤 넓은 의미의 '매체media'의 도전으로 혼재된 이후 변화한 근현대미술의 조건을 분석하고 "매체의 재창안"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pp.90-91

유튜브 세계에서 어떤 주제를 설정할지는 일견 완전히 자유로운 문제고 개인취향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많이 강조되고 거의 강박에 가깝게 기준이 되는 요소는 앞서 썼듯이 사실 대중화다. 여기서 '대중화'는 전문용어를 쓰면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기본이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확산시키며 유지하느냐가 경제적으로 환산된다. 오늘날은 사람들의 관심이 곧 이윤창출 및 사회적 순환의 자원resource이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의 최근 조류에서 관심은 자원으로 간주된다. 한 사람은 그만큼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Matthew B. Crawford, The World Beyond Your Head: On Becoming an Individual in an Age of Distraction, Farrar, Straus and Giroux, 2015, p.11.] 는 관점으로 보면 관심과 경제, 관심과 공동체 구성원 간 관계는 상호적으로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관심경제의 '관심'이 '사회적 관심social attention'과 '집단적 관심collective attention'이라는 맥락을 갖는 이유다. 

 

 

p.94

여기서(유투버 닉네임 '1분과학'의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우리는 기존 창작물(연구, 실험, 탐사의 유무형 산출물)을 자신의 문제의식, 스토리텔링, 이미지 편집의 관점 등으로 특화시킨 유튜버의 포스트크리에이터적인 면모, 포스트창작적인 성격(post-creativity)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전적으로 독창성에 근거하는 대신 문화 목록, 상품시장, 생활현장에서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되 다른 시각, 다른 구성법, 다른 이야기 전개 및 전달 방식을 취하는 창작 '이후'의 창작자와 창작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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