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41-42 문화활동이 권력 형식으로 전이되는 과정에는 교육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예술작품을 보고 첫눈에 반하거나 순식간에 희열을 느낄 수 없다.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할 때는 누구나 감정적 융합, 인지 행동, 해독 작업을 거치기 마련이다. 즉 작품의 내재적 논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사물을 지각하고 음미하는 도식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독 능력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이러한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은 바로 교육의 산물이다. (...) 교육 수준의 정도가 예술에 대한 고급취향/대중취향을 구별하는 계기가 되며, 거꾸로 예술에 대한 취향이 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예술에 대한 취향은 반드시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전통적인 대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식의 소비, 가구를 사들이는 취향, 패션감각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 일상생활의 실천들이 사실은 매우 밀접한 취향이 논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상의 문화가 사람들의 쾌락과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성의 형성과정은 사회적 분류 체계로 작동함으로써 사회적 지배를 강화시키고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억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 아비투스 Habitus : 개인들이 지닌 '아름다운 것(일상 영역)', '정당한 것(공공 영역)'에 대한 일정한 성향과 인지 틀
p.43 개별 성향의 차이는 사회적 아비투스의 차별을 만들어내고, 계급별 구별짓기 효과를 가져온다.
> 문화자본 : 지식, 성향, 문화적 대상물(그림, 조각품), 제도화된 학위, 자격증 등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적 인맥)
p.75 부르디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가 개인들의 아비투스를 사회적 아비투스로 변환시키는 중요한 기제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계급적 '구별짓기'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구별짓기의 효과는 단순히 미학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유지하는 방법, 말투, 걸음걸이 등과 같은 개인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준다.
p.76 실제로 문화에 대한 취향의 차이는 문화 획득의 차이에서 유래하는데, 출신과정과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문화가 이데올로기 지배를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p.77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를 통해 말하는 바는 취향(아비투스)이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실천 사이에서 이데올로기 효과를 발휘하는데 중요한 매개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때 이데올로기란 불평등의 은폐와 위장, 재생산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p.118 교육제도는 사회의 위계구조를 변형된 형태로 재생산하는 객체화된 분류체계이다. 학교를 통해서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는 동일시되고 학력상의 위엄은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동일시된다. 그리하여 학력 자격은 곧 자연권이라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피지배계급이 자신의 객관적 이해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문제틀을 만들어내는 것은 학교제도를 통해서다. 문화적 박탈의 사회적, 경제적 요인을 자각하는 정도는 문화적 박탈의 정도와 거의 반비례한다.
p.120 농업 종사자가 교육이나 문화 정보에서 가장 박탈당한 계급이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틀이 사회적 불평등에 가장 불만이 많은 계급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업의 지속여부와 인생의 성공 요인을 묻는 설문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이들이 사회적 박탈이나 경제적 불평등을 인식하는 수준은 가장 낮다. 다시 말해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을 자신의 탓으로 손쉽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신의 언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데올로기 생산의 장 champ de production ideologique (구조적 요인)
p.137 개인적인 의견의 생산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 선택한 정당이 제시한 노선을 객관적 수준에서 식별하는 단계이다. 둘째, 체계적 정치 방침의 단계로서 정치노선을 산술적 이해 관계의 수준에서 검토한다. 셋째, 계급 에토스의 단계로서 객관성을 넘어서 개인들의 감성이 개입하는데, 자신에게 익숙해진 계급적 무의식이 정치인의 인격과 개성을 판단하는 단계이다.
p.142 전통적으로 정치란 공적인 영역에 속하며, 개인들의 사생활은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해왔다. 따라서 정치학은 늘 공적 영역에 해당하는 기구들, 예컨대 정당, 의회, 행정부, 시작, 군대 등을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부르디외의 분석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정치적 의견이 공적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사적 영역의 문화적 취향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공적 영역으로 한정했던 근대 정치학의 범위를 넘어서 생활세계의 영역까지 확장시켜야 한다.
pp.142-143 정치에 대한 인식은 생활세계의 취향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그 형태는 개인들이 갖는 자본의 총량(경제자본+문화자본)과 자본 내의 구조 비율, 그리고 시간의 궤적(과거에 대한 기억)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정치 언어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시대적 아비투스가 형성되며, 이것이 바로 계급 정체성이다. 마르크시즘이 강조하는 계급의식과 달리, 계급 정체성은 개인들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시간에 따라서 표현방식을 달리한다.
pp.169-170 취향, 즉 아비투스는 차별화하고 평가하는 획득된 성향이다. 이것은 신체 기법, 사회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원리 및 평가 원리로 작동하며, 계급, 연결, 성별 간의 분업이나 지배의 분업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원리이다. 이것은 신체를 관리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아비투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대상의 일부분인 행위자들이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과 현실에 대한 분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취향은 사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개인에게 어울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분표 구조를 실천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이며, 따라서 사회적 방향감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식인데, 신체를 사회 세계의 여러 분할에 맞추어, 여러 의미에 부합하도록 가치들을 분배하는 사회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의범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분류 행위는 사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는데, 이것은 이미 획득된 실천적 지식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행위자들은 기계적인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 자신이 그 의미를 생산하는 데 일조했던 세계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 사회 세계를 분류하는 원리는 보편적인 형태나 범주의 체계가 아니며, 내면화되고 육화된 도식들의 체계이다. 의식과 담론의 층위 아래서 작동하는 역사적인 지각, 평가도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의 수준에서 큰 함의를 갖는다.
// 홍성민, 취향의 정치학 :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현암사
'Memo 구절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감에 관하여 (0) | 2020.01.10 |
---|---|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메모 (0) | 2020.01.01 |
주체의 저자성 authorship (0) | 2019.09.19 |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메모 (0) | 2019.09.18 |
긴수염고래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0) | 2019.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