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지 거의 4개월 이상 되는 거 같다. 미팅이 없는 이상, 친구와 약속이 있지 않은 이상, (요새는 친구를 많이 만나지도 않았다. 이미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미팅만으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인관관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는 도장을 찍는 매일 카페에 들려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몇시간씩 원고를 작성하고 리서치를 했다. 여행자이자 수행자의 마인드로, 큰 가방 안에 노트북과 외장하드를 들고선 몇시간씩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공장소에서 내 안에 푹 빠져 있는 것. 퇴사 이후 코워킹 스페이스에 등록도 해보고 도서관도 다녀보고 했는데, 이렇게 집중 잘되고 편리한 방식이 있다니,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만든 것이 올해의 큰 수확 중 하나일지 싶다. 물론 카페가 집에서 5분 거리이고 큰 체인점이며 오전 7시부터 연다는 것도 중요하겠지. 덕분에 갑목에게는 매우 좋은 아침 일찍 기상이 가능해졌고, 요새는 새벽 6시에는 일어나 7시에 카페로 출근하도록 알람을 맞춰놓고 실행하려 노력한다.
아무튼 오늘도 평범한 그런 하루였는데, 갑자기 함께 일하는 작가님께 이미지와 함께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정확히 말하면 작업도 하고 기획도 하는 현장에 있는 어떤 사람이) 현재 전시 중인 선생님의 작업에 대해 sns 상에서 비판을 한 것이었다. 작업에 대한 윤리성에 대한 저격이었고, 그것은 작업의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작가이기 이전의 사람으로서의 윤리와 도덕성에 대한 비난이었기에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선생님께서 내겐 보낸 메세지에는 본인한테 속았을(?) 나에 대한 미안함까지 담겨 있었다. 본인도 충분히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했지만 전달해야하는 큰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그냥 넘겼던 것이라고.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분에게 다른 저의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함께 전시연계 프로그램을 하는 입장에서 속이 상하기도 했고, 내가 먼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음에 대해 예상하고 언지를 드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또 관계맺는 태도는 어떠한가. 요즈음 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브하고 개인적이며 사회에서의 책임감은 제로. 복잡하게 얽히는 문제에 있어서는 발빼는게 먼저인 비겁한 사람. 이게 나의 적확한 모습이더라. 이제는 후배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현장에서 점차 전문가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사는 나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상과 사회를 관계적으로 파악하고 큰 시야로 판 자체를 그려가면서 나아가야 할텐데, 여전히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의 마인드로 매번 들춰내고 싶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문제도 사실은 더 객관적으로 작가님이 잘못했다고, 잘못 판단했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나는 작가님을 믿고 있다는 메세지로 대신했다. 정말 그랬다. 그리고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테지만,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뭉뚱그리지 말고 이번 사태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말이다.
올해는 스스로에 대해 뼈아픈 자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창피하지만 내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세상, 사람들과 더 링크를 걸면서 구석구석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알아가보는 것, 2020년에 해야하는 일 중 첫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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