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쩔 수 없는 물고기자리다.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와든 잘 섞여들고 그 안에서 나만의 유영을 즐긴다. 소리없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작지만 소중한 자리와 소소한 관계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대단한 무엇가를 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아직도 큐레이터라는 말이 어색하다. 그냥 시각예술 언저리에서 예술가와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관계가 규정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있다. 어느 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내가 한 대답을 아직도 기억한다. 미래를 규정하지 말고 지금 이 장소에서 우연히 함께 만난 사람들과의 오늘을 감사한다고.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어느 저녁 아주 짧은 대화를, 그것도 어색한 외국어로 한 대화가 평생 기억에 남고, 뜨개질을 배운 선생님의 툭 던진 한마디가 그렇게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듯이, 나는 잠깐 스치는 인연이 주는 강력한 힘을 믿는다. 조밀한 인간관계를 맺지않는/맺기 싫어하는 내 스스로를 한동안은 내가 회피적인 인간이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지만, 이를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물고기자리가 지닌 이러한 속성에 대해 이해하고 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공한 누구, 베프인 누구보다는 가끔이라도 함께 했을 때 즐겁고, 그래서 또 나를 찾고 함께 하기를 바라는 그런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고가하부 설치작품의 민원과 지원공모 신청 관련 예민한 부분에 대해 어이없는 실언으로 자책을 하며 밤잠을 설친 이틀간, 스스로 무너지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나를 믿는 사람들과 또 보고싶은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태풍이 부는 날, 짧게 기록해본다. // 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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