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말에 광화문을 들렀다. 주말 오전의 한가로운 광화문을 좋아했었던 때가 있었다. 평일 직장인들로 인해
꽉 찼던 길거리,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감돌았던 분위기가 주말이 되면 한산한 거리의 풍경과 더불어 부드러워지곤
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에 가서 느긋하게 책을 구경하다가 시네큐브나 스폰지하우스에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혹은
숙제하기 위해서 전시들을 순례하곤 했지. 그런데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자들로 인해 그런 정서가 완전히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주말에 광화문 일대를 가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오늘도 어기없이 한낮에 줄지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걷고, 또 일부는 확성기로 소리 높여 부르짖는 그들을 보면서
정치적 의견의 다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멀리온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시위라는 것이 합법적인 방식에서라면
매우 필요하고, 이에 대한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 목소리를 단합해서 내고 또 알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소리 자체를 금지하는 것,
다른 의견이나 생각이 있더라도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혹은 그들의 행위를 몰상식하다고 쉽게 치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더욱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내가 본 그들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았고, 식민과 남북체제의
지속으로 인해 독립할 수 없었던 사대주의 역사 안에 멈춰있는 것이다.
태극기를 길거리 자판에 늘어놓고 열심히 들고 다니거나 배낭에 꽂아놓고 걷는 뒷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애처롭게
보이기도 했다. (미국 국기와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할 때는 블랙코미디 같기도 했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한국사회가
매우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고, 패권을 넘겨준 다음 세대들의 행동거지와 판단이 매우 못마땅할 것이며
이해되지도 않겠지. 그러므로 자기네들이라도 한국을 지켜야겠다는 충정으로 주말마다 나와서 애타게 울부짖는 것이겠지.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박탈감을 베이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연대감 내지는 소속감과 애국심이라는 원료로 섞으면,
위력이 어마어마한 폭발물이 되는 것이다.
누가 과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식민의 경험과 냉전시대를 관통하는 남북전쟁 발발과 레드콤플렉스,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어던 지난 시간들 안에서 살아왔던 그들이기에 어쩌면 이것이 큰
도발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전쟁이나 기아를 겪어보지도 않고, 비행기를 초등학교 때부터 탔으며, 외국친구를 사겼던 경험이 있었던 나와 같은 사람과는 세계관 자체가 아예 다르겠지. 마치 "기묘한 이야기"의 뒤짚어진 세계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래서 내가 오늘 광화문에서 여러번 목 뒤에 소름이 돋아는지도 모르겠다. //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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