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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pisces 삶의 기록

놀라운 하루, 값진 조언들

by MIA_LeeQ 2019. 9. 5.

가끔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하루를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머리와 마음 깊은 곳에 들어오는 경우 말이다. 그건 일종의 '타이밍'이라 생각하는데,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순간에 정확히 핀트를 맞춰 들어오는 것은, 인생을 짧지 않게 살다보니 쉽지 않더라.

어제는 나에게 그런 날이었다. 하루동안 다른 장소에서 다른 두 사람에게 들은 각기 다른 조언. 모두 나에게는 인생 선배이자 좋은 동료이고 인간으로도 존경하는 분들인데, 여전히 견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을 건네주었다. 

 

1.

고가하부에서 작품 설치를 큐레이팅 했는데, 주말사이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와 구에서 작품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일하는 디렉터에게는 장소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들었고. 갑자기 작품 큐레이션과 결정에 대해 너무 자신이 없어지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며칠이었다. 이번에 고가하부의 작가를 선정하고 전체 주제와 내용을 잡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광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행동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높히는 적극적인 유도에 있었다.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그 이전보다는 좀 더 명확하게 작업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여지, 그리고 공간의 너른 광장을 가로지르거나 높이를 경험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방식들을 작업 안에 추가해 보는 것이었다. 어떠한 개념과 주제가 들어갔는지와는 별도로, 이러한 적극적인 방식의 제안에 대해 이용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이전과는 다른 자극을 추가해서 그들에게 공간에서의 다양한 움직임을 유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모든 나의 기획의도가 민원으로 인해 갑자기 나아갈 방향을 잃은 듯, 마음이 쭈그러들었다. 여기 이용자들은 기존의 방식으로 공간을 설정하고 예상했는데, 너무 무리하게 공간의 흐름을 바꾼건 아닐까. 그것도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비참한 생각마저 들었고. 그런데 자리에 함께 한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기운을 내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니.

이러한 시도도 해보지 않고 매번 비슷한 수준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다면, 프로젝트의 수준도, 작가의 작업 수준도, 그리고 공공공간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눈높이도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새로운 것은 당연히 사람에게 처음엔 방어기제가 발동시키기에 일시적일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꾸준히 지켜보면서 적응하면서 실제 반응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거라고. 그랬다. 나는 항상 타인의 반응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고 갈등이나 불협화음에 대해 굉장히 불편해서 내가 감내하고 맞추는 편을 선택하곤 한다. 이젠 그러지 말자고, 내 생각을 어느정도 개진하고 피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번 고가하부 프로젝트 역시 광장 이용자인 주민들을 설득하는 시간을 줘보자고. 내가 꼭 틀린 것도 아니고 상대방 이야기를 다 들어줄 필요도 없고, 대화를 나눠보자고. 그 끝이 어떠하든지!     

 

2. 

현재 작가님과 준비하고 있는 세미나의 경우, 매우 중요한(그리고 큰) 전시이고 너무 새로운 형식이라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어제 늦은 시간 광화문에서 만나 내 마음을 속시원히 말씀드리니, 걱정하지 말라시면 "욕 좀 듣지, 뭐"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 배포 좀 보소. 갑목이지만 물고기자리인 나는 쫄보인데 진짜 멋있네. '80%만 일하자'는 나의 신조에 맞춰 절대 무리한 스케줄을 짜지 않는 편인데, 세미나 프로젝트는 올해 마지막 일로 받았다. 왜냐하면 내 두번째 신조인, '새롭고 재밌어 보이는 것은 무조건 한다'에 부합하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내 패널을 만나고 판을 짜면서도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스스로 스트레스 게이지가 올라가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말씀도 주셨다. 경쟁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나'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세미나가 의미있을 거라고.

 

세미나 진행되는 거 봐서 내년에는 출판도 진행할 수 있을 거 같고, 계속 재미난 일들이 연이어서 일어난다. 이러한 일과 사건, 관계들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내 의지라기 보다는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도 어제는 뭔가 파도 사이에서 돌고래를 본 거 같은 놀라운 하루였기에 기록. //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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