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리뷰를 해볼 생각이다.
올해는 몸과 마음이 편안했던 한해였다. 새롭게 시도한 일도 없고, 누군가를 만났지도 않았다.
건강을 되찾고 안정감을 찾았으나, 그만큼 설레임도 없었다는 뜻이리라.
내 삶의 반경이 줄어들었고, 나의 감성의 폭도 그만큼 얇아져만 갔다.
기억나는 이슈도 없고, 좋은 강연을 들은 기억도 없다. 매력적인 인물도 없고, 그야말로 흥이 없었네.
다만 생각나는 중요한 세 가지.
하나. 차돌이.
첫조카가 작년말에 태어나고 나서 처음으로 가족의 의미를 제대로 느껴 보았으니...
그렇다. 가족의 소중함과 애뜻함을 알게 해준 내 차돌이. 그녀로 인해 책임감도 무거워졌지만,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사고 어딘가를 보러가는 것,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일깨워 준 고마운 존재이다.
난 사실 '누군가와' 보다는 '혼자'라는 단어에 익숙하게 살아 왔고, 누군가 함께 하면 귀찮고 방해받는 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아니라는 것을, 함께하면 오히려 더욱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고맙다.
둘째. 오랜만의 유럽여행.
로마-베니스비엔날레-스튜트가르트-뒤셀도르프-쾰른-뮌헨-프랑크푸르트 로 이어지는 여행길에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그냥 내 존재로써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7~8년 전 파리에서 방황했을 때의 나로,
그냥 아무런 의무없이 떠돌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는 여정이었다.
물론 기차를 원없이 탈 수 있었다는 것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점이었고.
난 기차가 좋다. 의자 한칸 안에서 풍경을 보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먹고 마시고.
주어진 한계 내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아무런 한계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방향을 잃는 것보다 더욱 행복하다.
셋째. 인생의 롤모델, 줄리아 차일드.
우연히 '줄리&줄리아'라는 영화를 보게 되고선 책도 찾아 읽고, 인터넷으로 무한 서치했던 인물.
서른여섯살에 르코르동블루에 들어가고, 그 이후 프랑스 요리를 통하여 삶의 기쁨을 만끽하였던 여성.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8~9할이 우울하고 따분하다고, 그래서 늘 뭔가를 동동거리며 하려고 했던 거 같다.
지금까지도 그냥 맥없이 있는 것이 싫어서 어디라도 가고, 뭔가라도 읽어야했는데,
실상 그녀는 타인에게 배풀고 생산하는 방식으로 아주 건강하게 삶은 즐기고 살아갔다.
그냥 그게 부럽고, 나 역시도 그녀처럼 이제부터라도 그런 생생한 에너지와 기운을 만들어내고 싶다.
올해도 이제 50일도 안남았고, 나의 서른둘도 저물어 간다.
글을 적으며 생각해보니, 올해의 나의 소박한 이슈는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떠한 문제든 혼자 골머리 썩으면서 고민하고 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곁에는 항상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도 내 옆에서 항상 자리하고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어쩌면 삶은 여럿이서 관계를 만들며 웃고 울고 하면서 만들어 가는게 아닐까. 내가 그들을 좀 더 의식하고
배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서른둘이 끝나가는 11월에 다짐해 본다.
줄리아 차일드처럼,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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