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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pisces 삶의 기록

액티비즘과 예술에 대한 단상1

by MIA_LeeQ 2012. 2. 6.
제작년 이맘때 여러 생각에 시작했던 교육학 공부, 그 당시에 처음으로 내 삶에 대해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개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시작하면서 맘을 먹게되었는데, 그 본격적인 계기는 아마 고대 김예슬양 자퇴사건이었던 것 같다.
소위 상위 몇퍼센트로 살았던 그녀가 모든 사회적 신분을 포기하고 선언하였던 자퇴, 그리고 나눔문화 연구원으로써 다른사람과의 경쟁구도가 아닌 함께하는 상생의 길을 그리며, 사회안에 속속 내재된 여러 무형의 탄압에 대하여 일깨우는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과 행보에 앞서 그것을 행하기까지의 여러가지 고민과 고뇌에 대한 글을 접하면서, 나만 그랬던게 아니구나 란 위로와 힘을 얻었다. 
초등학교부터 혹은 더 일찍이 시작되는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구도와 그 속에서 스스로 인지하는 낙오자,패배자/승리자 라는 아주 단타적인 감정, 여기서 친구들은 내가 싸워야만 하는 적이지 동료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한 감정의 부추김은 대학교로도 이어져 우정을 쌓기도 전에 스스로 고립되어 진로를 고민하기 바빴다. 사회에 적응 못하는 것도 내 잘못이었고, 빠릿하게 내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것도 나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들어 퍼뜩, 이런 과정이 죽을 때까지 일어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불행했다. 타인과 공감할 수 없음에 쓸쓸했고, 남들보다 뒤쳐져있지는 않을지 늘 불안했다. 미디어에는 자기계발과 명상 및 심리치료가 넘쳐났고, '루저'나 '잉여', '찌질이' 가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를 돌보고 계발하라는 논리가 마치 19세기 '야만(sauvage)'을 정의하는 '문명'의 시선과 같이 대단한 '진리'이자 당연한 '사실'처럼 다가왔다. 정말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내가 부족하고 똑똑치 못해서 이렇게 병신같이 살고 있다는 확신! 이 무서운 명제가 우리들 머릿속을 귀신처럼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다지원에서 짧지만 나와는 다른 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대안학교 선생들, 일반학교 선생들, 복지관련 학생 및 종사자-과 함께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그게 아니란걸, 나의 이런 감정이 사실은 사회가 통제하기 쉽도록 최면을 걸어놓은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근 2년간 미술심리치료를 다니면서 내 안에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했던 괴로워했던 그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더욱 큰 문제는 그 문제가 내 안에 있다고 쇄뇌시킨 사회에 있다는 것을 지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내 신변의 다양한 일들을 소화시키느라 정신없었는데, 다시 다지원 세미나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건축, 도시, 사회적인 삶"과 관련된 테마이다. 이와사부로 코소의 글들을 읽으며 도시개발과 건축, 그리고 도시의 팽창과정에서 변함없이 진행되는 액티비즘으로써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내가 요즘 관심이 있는 부분도 이 액티비즘과 예술의 영역에 대한 접점에 대한 것들이기에 더욱 기대된다. 신자유주의, 후기자본주의에서 재화적 가치에 대항하는 순수한 노동력을 옹호하는 것이 액티비즘과 예술이기에 이 둘은 쌍둥이와도 같다는 박은선 작가의 해석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고. 어제도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한 콜렉티브 그룹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 저항의 힘이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 시작되는 힘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앞으로 액티비즘과 콜렉티브 작업들에 대하여 좀 더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획일화된 시선이나 잣대로 그들을 일괄적으로 묶어서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고 개별적인 케이스 마다의 사적인 히스토리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사회개혁이나 사회비판이 아니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란 타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겸허히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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