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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구절들/혐오,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

정체성 정치 by 마크 릴라 Mark Lilla

by MIA_LeeQ 2020. 3. 11.

20세기 미국 정치사 두개의 "통치 체제"

1.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 통치체제 :

  - 뉴딜 시대부터 1960년대 시민권 운동과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0년대에 내세운 구호)의

   시대까지 이어지다가 1970년대에 소진

  - 시민이 위험과 곤경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기본권의 부정에 맞서는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미국을 그림

  - 표어는 연대, 기회, 공적 의무 

  - 정치적 

  - 미국 진보주의의 양대 주제는 정의와 연대, 진보주의자들은 정의와 연대의 보장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제도-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안에서 권력을 쥐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을 이해

 

2. 로널드 레이건(1981-1989) 통치 체제 :

  - 198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 기회주의적이고 무원칙적인 대중영합주의에 의해 종결되는 중 

  - 국가의 속박에서 풀려난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 기업이 번창하는 더 개인주의적인 미국을 그림 

  - 자기 신뢰, 최소 정부 

  - 반정치적 : 정치혐오 확대 -> 국민들의 정치참여 축소 -> 민주주의 약화 -> 사회적 불평등 초래 

 

 

좌파의 정체성 정치는 원래 대규모 민중 계층들-아프리아계 미국인들,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치제도를 동원하고 정비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과오들을 바로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정체성 정치는 1980년대 즈음에 자기 존중과 점점 더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되는 자기 정의를 내세우는 사이비정치에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그런 사이비정치다. 그로 인한 주요 결과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향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공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익을 실현하려면 무엇을 신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로 방치되었다. (...) 진보적 정체성 의식의 전진은 진보적 정치의식의 후퇴를 의미했다.

- pp.13-14

 

정체성 진보주의는 정치적 기획이기를 그치고 복음주의적 기획으로 변신했다. 양자의 차이는 이것이다. 복음주의의 핵심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권력을 장악하여 진실을 방어하는 것이다. 

- p.18

 

 레이건의 교리문답은 (...)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신조가 그 내용이었다.

 * 좋은 삶은 독립적인 개인의 삶이다. 개인은 가정, 교회, 소규모 공동체에는 분리할 수 없게 속해있을지 몰라도 공통의 목표와 서로에 대한 의무를 가진 공화국 시민은 아니다. 

 * 부의 분배가 아니라 축적을 우선해야 한다. 부의 축적은 개인들과 가정들이 독립을 유지하며 번창할 수 있게 해준다.

 * 시장이 자유로워질수록, 시장은 더 많이 성장하고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든다.

 * 정부가 "문제다." 독재정 정부나 비효율적인 정부, 혹은 부당한 정부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 그 자체가 문제다. 

- pp.35-36

 

루스벨트의 비전 안에서 네 가지 보편적 자유가 선언되었고 대다수 사람들이 그것들을 당연시했다. 그것들은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핌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말이다.

- p.40

 

이렇게 우리 자신이 당하는 억압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정체성 정치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우리는 근본적이며 잠재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정치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서 직접 나온다고 믿는다. 그런 정치는 다른 누군가가 당하는 억압을 끝내기 위해 일하는 것과 정반대다. / 컴바히강 집단[1974년에 결성된 유색인 페미니스트 집단] 성명(1977)

- p.62

 

어떻게 성공적인 진보주의적 연대의 정치가 어떻게 실패한 정체성 사이비정치로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간단하지 않다. 그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미국 사회의 심층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또한 1960년대에 베트남전쟁 반대에 의해 촉발된 정치적 낭만주의의 물결, 신좌파New Left가 미국 대학교들로 퇴각한 것 등과 관련이 있다. (...)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진보 및 급진진보 정치 활동가들은 주로 노동계급이나 농업 공동체 출신이었고 지역의 정치 클럽이나 직접 현장에서 육성되었다. (...) 오늘날 진보 및 급진진보 정치 활동가들은 거의 다 대학교들에서 육성된다. 법률, 언론, 교육 분야의 주로 진보주의적인 직업들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 p.64-55

 

(정치적) 낭만주의는 레건주의를 낳은 바로 그 시간과 공간, 곧 1950년대의 부유한 신흥 교외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그 시절의 미국인들이 교외 개척지에서 꾸려가는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품은 불안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면, 당대의 책들과 영화들을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된다. 그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어휘가 개발되었다. 사람들은 대중사회mass society 속으로의 침몰을 다룬 책, 조직 인간organization man이 되는 것, 외로운 군중lonely crowd의 얼굴 없는 일원이 처절한 생존경쟁rat race에 내몰리는 것을 다룬 책을 읽었다. 심리학자들은 소외된 젊은이들이 목표 없는 비행 청소년들로 되어간다고 염려하면서 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화감독들은 회색 플란넬 정장의 남자의 불만, 2번가의 포로의 불만, 이유 없는 반항을 일삼는 젊은이의 불만을 반영핳고 또한 틀림없이 증폭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여성의 신비에 질식된 여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도 등장했다.

   바야흐로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의 시대였다. 이 용어는 1950년대 초반에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고안한 것이었다. (...) "초기 정신분석의 환자 대다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이미 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그가 그 누구 혹은 무엇이 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들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반면에 오늘날의 환자 대다수는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되어야 하는가- 혹은 심지어, 누가 되어도 괜찮을 성싶은가-라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 교외 개척지 주민들이 경제사회적으로 필수적인 활동에서 해방될수록,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그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유의미하고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면, 그런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은 평화와 번영밖에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절박했다. (...) 많은 대학생들은 최근에 번역된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의 글, 카프카의 소설, 토머스 머턴의 사색적인 글, 그리고 이제 저렴한 문ㄴ고판으로 구할 수 있게 된 사뮈엘 베케트와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을 읽었다. 또한 그들은 대학생 선교외나 더 나중에 생겨난 가톨릭 성령 쇄신회 같은 기존에 없던 종교단체들에 가입했다. 부모들이 개인적 부의 축적에 골목하는 동안, 그들은 개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바로 이 세대가 1960년대를 발생시켰다.  

- p.73-75

 

원래 신좌파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약간 맑스주의 식으로 해석하여, 겉보기에 개인적인 모든 것이 실은 정치적이라는 뜻으로, 권력투쟁에서 벗어난 영역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 그러나 저 구호호를 정반대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우리가 정치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은 그저 나를, 내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표현하는 개인적인 활동일 따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오늘날의 어법을 사용하면, 정치 활동은 나의 정체성의 반영이라는 것이 저 구호의 의미일 수도 있다. 

- p.79  

 

신좌파가 진보주의에 남긴 유산은 이중적이다. 신좌파는 사안 중심의 운동들을 낳았고, 이 운동들은 다양한 분야-특히 환경과 해외 인권 분야-에서 급진진보적 변화가 일어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신좌파는 정체성 중심의 -차별 철폐, 다양성, 여성주의, 동성애자 해방을 위한- 사회운동들을 낳았고, 이 운동들은 미국을 50년 전보다 더 관용적이고 더 정의롭고 더 포용적인 곳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신좌파는 민주당의 통합에 기여하지 않았고 미국인들이 공유할 미래에 관한 진보주의적 비전을 개발하지 않았다. 

- p.82

 

중요한 이야기는 60년대 세대가 자신들의 특이한 역사 경험에 기초를 둔 특정 정치관('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대학생들에게 전수했다는 것이다.

   그 특이한 역사의 교훈은 두 가지였다. 첫째 교훈은, 정치 활동은 반드시 자아를 위한 진정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 더 큰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60년대 세대가 피해 달아나던 바, 곧 그들 아버지들(조직 인간)의 세계였다. 미국 정당들과 정치기관들의 타성에 대한 실망에 기초한 둘째 교훈은,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유일한 참여의 방식은 (흑인 시민권 운동에서 보듯이) 운동 정치라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교훈에서 귀결되는 결론은 이러했다. 당신이 정치적인 개인이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첫걸음은 정당 가입이 아니라 당신에게 어떤 심층적인 개인적 의미를 가지는 운동을 탐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 p.86

 

'페이스북 정체성 모형Facebook model of identity'에서 자아란, 내가 '개인 브랜드personal brand'와 유사하게 구성하는 홈페이지다. 그 자아는 타인들과 연결되는데, 나는 그 연결들을 나의 재량대로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민주 정치의 핵심 개념인 '시민의 지위'는 정치적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각자의 개인적 특징과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연결하는 끈이며, 이 끈이 그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 반면에 페이스북 정체성 모형에서는, 나에게 중요하며 내가 승인하기로 결정하는 끈들이 정치적이지 않다. 그 끈들은 단지 선택적 친화성의 표현일 따름이다. 심지어 나는 객관적으로 볼 때 내가 속하지 않은 듯한 집단과 나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다.

-pp.91-92

 

루스벨트 통치 체제 기간에 집단 정체성은, 정치 활동을 위해 사람들을 시민들로서 동원하는 정당한 수단으로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사회구성원들의 평등한 지위라는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필수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반면에 페이스북 모형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아, 바로 나의 자아다. 공통의 역사나 공통의 이익, 심지어 공통의 생각조차도 그 모형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늘날 좌파 성향의 젊은이들은 (...) 자신이 X로서, 다른 X들에 관심이 있고 X성과 연관된 의제들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에 참여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p.93

 

마크 릴라의 방법 :

운동정치보다는 제도 정치가 먼저고, 목표 없는 자기표현보다 민주적 설득이 먼저고, 집단 정체성이나 개잉ㄴ 정체성보다 시민의 지위가 먼저다. 넷째 교훈은 개인주의와 원자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시민 교육이 긴요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 p.108

 

민주주의에서는 다른 견해가 항상 존재하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정체성과 연결된 사회운동에 열중할 때 발생하는 결과 하나는 당신이 유사한 생각과 유사한 얼굴과 유사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로 둘러싸이는 것이다. 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들을 순수성 검사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 만사가 원칙의 문제인 것은 아니며, 원칙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대개의 경우 이 원칙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 원칙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원칙들을 어쩌면 희샌시켜야 함을 상기하라.

- p.122

 

레이건 시대의 삶에 깃든 작은 역설들 가운데 하나는, 대학교에서 자신들이 배제되었음을 자각한 보수주의자들이 지적인 평행우주를 창조한 것이었다. 이 평행우주는 부유한 후원자들의 지원금을 끌어들였으며 잡지, 출판사, 대학교 신문, 캠퍼스 단체들, 여름학교들을 갖췄다. 여름학교들은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핵심세력을 교육하고 정치계에서 지금도 막강한 보수주의자 연결망 안에 편입시킬 기회를 제공했다. 한편, 대학교들을 지배하는 진보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정체성 의제들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실질적인 정치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고 진보주의적 기관들에서 함께 일한 헌신적인 핵심세력을 키워내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제는 민주당 후원자들 가운데 비교적 시민을 중시하는 이들이 보수주의자들을 본보기로 삼아 민주 정치의 원칙과 현실 안에서 신세대 좌파를 교육하고 연대감과 공통의 목적을 심어주는 독립적 프로그램과 운동들에 자금을 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 p.142 각주

 

// 마크 릴라(전대호 옮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필로소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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