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기간 밀린 주간지를 읽다가 엄기호 선생님의 좋은 텍스트를 발견하여 클립. 공공영역에서의 타인, 즉 stranger에 대한 태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글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어떻게 하고 있는가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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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서의 관심, 시민에 대한 관심이란 어떤 것일까? 공공영역에서 만나는 상대방에 대해, 그 개인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존재가 환기하는 시민적 관심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새인의 사생활과 신상 정보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민적 삶에 관한 관심이다."
"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취향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미디어와 관계망, 사회적 공간이 있다. 이런 장치가
우리들을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솔깃하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사람들 대부분은 장치가 만든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그래서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닌 사회 통치가 된다. 타인의 사적 기록에 대한 관심을
시민으로서의 관심으로 돌리고, 시민으로서의 관심에 더 솔깃함이 이 통치에 저항하는 것이다."
먼저 무관심이 존중인 공간이 있다. 대중교통수단인 택시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택시를 탈 때 긴장한다. 택시 기사가 무슨 말을 어떻게 걸지 모르기 때문이다. (...)
이런 '사회적' 공간에서는 무관심이 존중이고 배려다. '예의 바른 무관심'이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2015)에 잘 속되어 있다. 그저 그런 무관심이 아니라 배련된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며, 있어도 없는 척해야 한다. 이 예의 바른 무관심을 '시민적 무관심'이라고도 한다. '시민적'이라는 말에 집중하면 통상적인 의미의 예의 바른 무관심을 넘어 좀 더 적극적인 '시민 됨'의 윤리가 생긴다. 즉 친밀한 관계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노인도 아니라 그저 '시민', 나와 동등하고 평등한 주체로 존중하는 정제되고 배려된 무관심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는 친밀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친밀감을 느끼지 못할 때 벌어진다. 이 두 경계에 걸친 미묘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활동단체, 사회적 공공영역이 대표적이다. 이런 영역에서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은 사랑이나 우정과는 다르다. 관계가 발달해 우정으로 발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사적인 관계'로 진화되어 완전히 영역이 달라지는 경우다.
이 영역에서 관계도 기본적으로 시민적 관심과 다르지 않은 '비인격적 관계'다. 삭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비인격적 관계에선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이나 대화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침해가 된다. 비인격적 관계에서는 '인격(personality)'은 타인의 사생활(privacy)과 신상(personal details)을 의미한다. 개인의 생활(personal life)이 곧 인격이다. 그의 사(personal)를 세심하게 보호해주는 것이 관심이며 존중이다.
- 엄기호, '시민적 무관심, 시민으로서의 관심', 시사인(2020.1.14), p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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