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러한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
[…]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by Susan Son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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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게 된다. 내가 있는 지점이 어디쯤인지,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껏 믿어왔던 자의식 과잉상태로의 미화되고 과장된 '나'는 집어치우고, 결코 남들의 시선 따위로 값 매겨지는 내가 아니라 어느정도 '객관화의 과정을 거친 나라는 인간'(혈님의 라디오에서 캣우먼 옹이 말했던 공허한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의 욕망-어쩌면 아바타처럼 타인의 욕망에 조종되어 있었다는 수준의 깨달음일지라도-을 알아차리고 조금씩 자신의 삶을 살아가리라 용을 쓰는 마치 사춘기와도 같은 그것!)을 알고 싶다는 거다.
episode 1.
작년 겨울, 갑자기 친해져 급하게 술잔을 기울이게 된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넌 좀 포지셔닝을 할 필요가 있어. 네 자신이 어떤 사람인줄 알아야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작년 하반기에 겪은 뼈아픈 인간관계의 실책골-혹은 자살골-에 대한 이야기였으나 모든 맥락에서 통한다고 본다.
내가 나 스스로를 몰랐으니 (적어도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노라고, 삶에서의 그 어떤 목표와 재미를 갖지 못했노라고. 가슴 아프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정.
갑자기 궁금해져서 네이x 사전에서 찾아 본 'positioning'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1. (자리 잡고 있는) 위치
2. (있어야 할・알맞은) 자리, 제자리
3. (사람이 앉거나 누워 있는) 자세; (사물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
그러니까 포지셔닝이란 두 가지 의미인거네. 하나는 현재 내가 위치하고 있는 상태(현상태). 다른 하나는 내가 있어야 할 알맞은 자리(제자리).
episode 2.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는 굉장히 나이브한 인물이 나온다. 김강우가 분한 배역이었는데, 유준상이 연기한 시인의 후배로 통영에 내려와 시 쓴답시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그런 캐릭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두 명의 여인에게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며 가벼운 만남만을 종용한다. 김강우를 좋아하는 옥소리가 (어쨌거나 둘은 이미 사귀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화분을 주는 장면에서 '왜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꽃에게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르겠다'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과히 압권이다. 비슷한 컷이 한번 더 연출되는데, 유준상 커플과 김강우 커플의 식사자리에서 벌어지는 난상토론. 좋게말하면 현실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속물적인 유준상을 격멸하는 듯한 김강우의 말투에서 본인은 매우 순진무결하다는 믿음 같은 것이 보여서 불편했다. 더불어 지나가는 거지를 가리키며 누가 거지를 제대로 볼 수 있겠느냐고,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거지를 한낫 돈없는 불쌍한 인간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례한 것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거지는 그냥 거지일 뿐이라며 오버하지말라는 예지원의 말에 ko.
누구나 속물적인 근성을 내면에 품고 사는 것이고, 이것을 부정하는 순간 굉장히 불편해지고 삐딱해진다는 것.
(현실에 발붙이기 위해) 치열하게 살지않고, 그렇다고 순수하게 (나이브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지도 않는 그런 인간.
김강우가 연기한 그 캐릭터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었다, 적어도 현재의 내 상태로서는.
그렇다면 난 왜 이 시점에서 괜한 수잔 손탁의 글을 인용한 걸까. 이것도 김강우가 연기한 인물에서 답을 찾을 수 잇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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