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4
좋은 수집이란 물건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고 또 그 가치를 널리 현양하는 행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수집이란 해당 물품의 개발이기도 하려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창작으로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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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쓸모도 없는 물건들을 그렇듯 부지기수로 모아대는가."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여기엔 '왜'와 같은 합리적인 길은 없다. 쓸모가 있어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을 유달리 사로잡는 무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으는 사람은 수집하는 물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고 있는 셈이다. 모으는 물건들은 각각 자신의 형제인 셈이다. 혈연관계에 있는 자가 여기에 해우하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모으는 물건, 뭐랄까 그 사이엔 유구하고도 심오한 인연이 있다. 수집에서 나의 고향을 발견하는 것이다. 수집가는 환희를 맛본다. 그래서 물건과 해후하지 못하면, 어딘가 스산해진다. 무언가 모자란 것이다. 구하려는 마음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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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모든 장애들을 고려하더라도, 수집이 단순한 사유로 끝이 난다면 그것은 사장이다. 그것은 수집이라기 보다는 퇴적이며 한낱 저장에 지나지 않는다. 물건은 살아나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 물건을 소장한 사람도 살게 되는 경우는 없다. 사람들과 함께 보는 기쁨을 상실할 때, 그리하여 모든 것이 사유물로 변해갈 때 수집은 일종의 범죄라고 불러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유가 개인이라는 벽에 가로막히게 되면, 그것은 일종의 은익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사물에 대한 단절이요, 살육이다.
오랜 옛날부터 다기는 남들한테 함부로 보여주지 않았고, 또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고 어디에 두는지 그 소재마저 비밀에 부치는 풍습이 있다. 이를 인정하는 다종다양한 이유가 운위되고 있다. 진중하게 다루어야 할 물건은, 공개해야만 하는 물건과는 다르다고들 이야기한다. 또 아주 드물게만 사용하는 것이 다기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높이는 행위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 이론에는 이기적인 그림자가 농후하다. 아름다운 것을 향한 찬탄보다도 비장에 대한 흥미가 더 큰 것이다. 진정으로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 할 것이다. 보여주지 않는 태도보다 보여주고 싶어하는 태도가 훨씬 더 자연스럽다. 또 기분도 더 밝아진다. ... 사물에 대한 사랑은 솔직해야만 한다. 사물은 사람과 사람의 훌륭한 중개자다. 마음과 마을을 조금이라도 기물을 매개로 해서 만나도록 하지 않으면 않된다. 부질없이 비장하는 것은 다도의 정신을 거스르는 일일 것이다. 다인의 취미는 변태여서는 안 된다. 다조의 참뜻이 당연히 그런 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다기가 사유로 말미암아 죽어서는 안 된다. 다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화합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방식이다. 그 방식에 따라서 사물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사람 역시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 잘못된 소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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