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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구절들

분단 이후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날은 1971년 8월 20일이었다.

by MIA_LeeQ 2010. 5. 27.

당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빼고, 소련중국과 화해를 추진했다. 그동안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막대한 재정 적자를 줄일 필요가 있었던 '반공주의자' 닉슨은 소련과 '데탕트'를 추진했고, '죽의 장막'으로 남아 있던 중국의 문을 두드렸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1971년 닉슨 행정부는 6만 6천명의 주한미군 가운데 2만 2천 명을 철수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1971년 7월에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계획이 발표되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좀 더 과감한 한반도 긴장 완회와 남북대화를 요구했다. 그동안 이른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국면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남과 북이 능동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1970년대 초, 주한 미국 대사관의 '외교문서'를 비롯한 미국 국무부 비밀자료들이 해제되면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역할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닉슨 행정부의 중국과의 화해,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의 대화요구,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국내 정치적 필요가 결합되면서 최초의 남북회담(이산가족 만남을 위한 적십자 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 p.18, 김연철, 냉전의 추억,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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