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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구절들/토론극장: 우리_들

우리 모두는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by MIA_LeeQ 2020. 1. 31.

문화인류학자 김현경 선생님께서 서평을 쓴 에릭 번의 <심리게임>은 우리의 소통 이면에 있는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고 있는 다양한 게임들을 분석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이면교류'의 기저에는 저자가 '어루만짐stroking'이라고 칭하는 친밀감에의 갈망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한다. 인간이란 페르소나에 갇혀 우리 안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일지니...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6908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게임의 바다’에서 유영하기 위하여 - 교수신문

에릭 번의 (원제: Games People Play)은 왜곡된 의사소통을 ‘이면거래’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자취하는 딸의 집에 수시로 찾아가서 집이 왜 이 모양이냐고 야단치면서 청소를 해주는 엄마를 예로 들어보...

www.kyosu.net

 

 

   "인간의 삶이란 대체로 죽음 혹은 구원자가 찾아올 때까지 시간을 채우는 과정이며, 그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어떤 종류의 교류를 할 것인지 선택할 여지도 매우 적다. (...) 과거의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으니,

     바로 자발성이다. 게임보다 더 큰 만족을 주는 무엇인가가 있으니, 바로 친밀감이다." 

     - 제 18장 게임이후, p.264

 

 

1977년 파티나 잉글리시Fatina English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했다. 즉, 게임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아동기 초기에 익숙해진 방식으로 자기를 어루만져줄 사람을 현실에서 찾아낼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이때 아동기 초기에 익숙해진 방식은 금지된 감정을 은폐해주는 (위장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였던 방식이다('사기' 게임). 그에 대한 반응으로 사람들은 자아 상태를 전환한다. 잉글리시는 실제로 크게 세 가지 유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너 이번에 딱 걸렸어' 게임에서 개인은 무력하거나 반항적인 아이에서 부모 상태로 바뀐다. 둘째, '나를 좀 차주세요' 게임에서 개인은 군림하거나 도와주는 부모에서 아이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난리법석' 게임에서는 양쪽이 동시에 자아상태를 바꿔서 서로를 끌고 간다. 

    잉글리시는 사람들이 때때로 어떤 방식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실존적 입장을 확인하는 게임을 하는지도 설명했다. 예를 들어 조니의 엄마 같은 사람은 '너 이번에 딱 걸렸어' 게임을 할 수 있고, 거기서 '나는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입장을 강화한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다'는 실존적 입장을 강화하는 '나를 좀 차주세요' 게임으로 바꾼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개인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초적인 조직화 원리를 강화하는 예로 간주할 수 있다. 두 가지 조직화 원리란, 명시적 기억('나는 옳고 당신이 틀렸다')과 더 깊이 자리 잡은 잠재적 기억('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다')이다. <심리 게임>이 출간된 후 에릭 번은 이 문제와 관련해, 가슴 쪽에는 "저를 사랑해주세요."라고 쓰여 있지만 등 쪽에는 "너 말고, 이 바보야."라고 쓰여진 심리적 티셔츠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클로드 슈타이너Claude Steiner는 게임이란 '어루만짐'을 둘러싼 권력 놀이라고 강조했다. '어루만짐'은 성인의 심리적 생존에 꼭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것을 가로막는 사회적/내적 규범 때문에 도처에서 희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 pp.19-20

 

 

엄마와 강한 친밀감으로 연결되었던 시기가 끝나고 나면, 개인은 남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화 생존을 뒤흔드는 딜레마에 맞서야 한다. 이 딜레마의 한쪽 뿔은 유아기 때와 같은 형태의 신체적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회적/심리적/생물학적 힘들이고, 다른 쪽 뿔은 인정받고 싶다는 멈추지 않는 갈망이다. 여기서 사람들 대부분은 주어진 조건과 타협한다. 그래서 미묘하고 때로는 상징적인 어루만짐만으로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결국에는 신체적 접촉을 바라는 원초적 갈망이 채워지지 않았더라도, 인정의 뜻으로 머리만 끄떡여줘도 어느정도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 타협 과정은 이를테면 '승화' 같은 여러 용어로 부를 수 있을 테지만, 어떤 이름울 붙이든 유아적 자극-허기가 부분적으로 병형되어 인정-허기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한다는 결과는 마찬가지다. 타협하는 것이 복잡해질수록 사람은 인정받으려고 점점 더 '개인화'된다. 바로 이러한 개인적 변별성에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회적 교제가 다양해진다. 영화배우라면 등골이 휘지 않기 위해 익명의 무차별적인 팬들로부터 매주 수백 번의 '어루만짐'을 느껴야 할 테고, 과학자라면 존경해 마지않는 거장으로부터 해마다 '어루만짐'을 받아야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루만짐stroking'은 친밀한 신체 접촉을 뜻하는 일반 용어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루만짐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아기를 글자 그대로 쓰다듬는 사람이 있고, 안거나 다독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난스럽게 꼬집거나 손가락을 튕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행동이 대화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아기를 다루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말을 할 때 어떻게 할지 거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구어체에서 '어루만짐'은 그 의미를 확장해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행동이라면 그 어떤 것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어루만짐을 사회적 행위의 기본 단위로 사용할 수 있다. 어루만짐을 교환하는 것이 곧 교류이며, 이 교류가 사회적 교제의 기본 단위다. 

- pp.31-32

 

 

자극-허기인정-허기 다음에는 구조-허기가 문제가 된다. 청소년들의 영원한 숙제는 [상대에게] "그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지?"가 아니던가.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상황은 "오늘은 벽들이 죄다 수직으로 서 있는 거 같지 않나요?" 따위 말고는 별 흥미로운 말이 생각나지 않는 비구조화된 시간, 침묵의 순간, 사회적 공백이다. 깨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다. 이런 실존적 의미에서, 모든 사회 생활의 기능은 이 숙제를 서로 돕자는 것이다. 

    시간 구조화의 조작적 측면은 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내용적/사회적/개인적인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시간을 구조화하는 가장 흔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고 실용적인 방법은 외적 현실의 내용을 다루도록 짜인 계획으로서, 소위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계획을 전문 용어로는 활동이라고 부른다. '일'이라는 용어가 적당하지 않은 이유는 사회정신의학social psychiatry 일반 이론에서는 사회적 교제도 일의 한 형태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적 프로그램은 외적 현실을 다루면서 부딪치는 우여곡절에서 생긴다. 여기서 내용적 프로그램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활동이 '어루만짐', 인전, 그밖의 더 복잡한 형태의 사회적 교제가 이뤄지는 행렬을 제공하는 경우뿐이다. (...)

    사회적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의례적 상호 작용, 혹은 거의 의례가 된 상호 작용을 낳는다. 사회적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것이 해당 지역에서 받아들여지느냐, 즉 흔히 말하는 '바른 예절'이냐 여부다. (...)

    사람들이 친해질수록 개인적 프로그램이 점점 더 많이 끼어들면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밖에서 보면 사건들은 우연으로 보이고 실제로 사건 관련자들까지 그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사건들은 일정한 범주화와 분류가 가능할 정도로 명확한 패턴을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그 진행 과정도 암묵적인 규칙과 규범에 제한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규범은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교류가 규범대로 진행되는 한 드러나지 않지만, 규범에 어긋나는 수가 나오면 말로든 법적으로든 '파울!'을 외치는 상징적 행동을 불러오며 바로 그 정체가 드러난다. 이러한 연쇄 과정은 심심풀이 놀이와는 달리 사회적 프로그램보다는 게임이라 불리는 개인적 프로그램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직종이 조직 생활은 물론이고 가족 생활, 부부 생활 등은 모두 같은 게임의 여러 번형들이 해를 거듭하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 pp.33-35

 

 

인간이 하는 놀이의 핵심적인 속성은 그 정서적 가벼움이 아니라 거기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데 있다. 이 사실은 부적절한 정서를 표출했을 때 제재가 가해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심심풀이 놀이와 게임은 진짜 친밀함으로 묶인 진짜 삶의 대용물이다. 그런 이유에서 심심풀이 놀이와 게임은 진정한 결합이라기보다는 임시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신랄한 형태의 놀이를 특징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개인적 (보통 본능적) 프로그램이 점점 뚜렷해지고 사회적 패턴과 외적 제한이나 동기를 모두 포기하기 시작할 때 친밀함이 나타난다. 친밀함의 원형은 남녀가 나누는 사랑의 행위다. 

   구조-허기에는 자극-허기와 똑같은 생존 가치가 있다. 자극-허기와 인정-허기는 각각 감각 기아와 정서 기아를 피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감각 기아와 정서 기아 모두 생물학적 악화를 초래한다. 구조-허기는 지루함을 피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 지루함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면 디루함은 정서적 기아의 동의어가 되고 정서적 기아와 같은 결과는 낳을 수 있다.   

-pp.36-37

 

 

자아 상태란 관련된 행동 유형에 따라오는 감정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각 개인마다 사용 가능한 자아 상태의 목록은 한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목록은 역할이 아니라 심리적 실체다. 이 목록은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부모 역할을 하는 인물과 닮은 자아 상태 (2) 자율적으로 객관적 현실 평가를 지향하는 자아 상태 (3) 아동기 초기에 고착되어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미성숙한 아동기 흔적을 대표하는 자아 상태.

- pp.41-42

 

 

(게임의 덫에서 벗어나기) 자율성 획득은 자각, 자발성, 친밀감, 이 세 가지 역량의 발휘 혹은 회복으로 나타난다. 

   자각이란 남에게 배운 대로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커피포트를 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유아의 보기와 듣기가 지닌 특성은 어른과는 다르며, 생의 처음 몇 해에는 보기와 듣기가 더 미학적이고 덜 인지적일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

   자각은 과거나 미래 같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하다. (...) 자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느끼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시간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살아 있다. 그는 자기가 죽은 후에도 나무들은 계속 거기에 있겠지만 자기는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최대한 강렬하게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발성은 선택권을 의미하며, 모든 가능한 것(부모의 감정, 어른의 감정, 아이의 감정) 가운데서 자기 감정을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이것은 게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박적 충동, 배운 대로만 느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을 뜻한다. 

   친밀감은 자각하는 사람이 지닌 자발적이고, 게임에서 자유로운 솔직함이다. 직관적 지각력을 지닌 때 묻지 않은 아이가 지금 여기에서 순박한 삶 가운데로 놓여나는 것이다. 직관적 인식이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솔직함이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실험으로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방작 친밀감' 같은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똑같은 이름은 아닐지라도, 자기는 개입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프로 유혹자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현상이다.

-pp.259-260 

 

 

에릭 번(조혜정 역), 심리게임: 교류 분석으로 읽은 인간 관계의 뒷면, 교양인, 2009(196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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