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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구절들

주디스 버틀러,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by MIA_LeeQ 2025. 9. 23.

아실 음베(Achille Mbembe)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것은 공통의 세계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책무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음벰베는 만일 우리가 기업의 이익, 사유화, 식민화 자체의 목적으로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는 것을 행성 차원의 기획 혹은 사업으로 여긴다면, 진정한 저항, 즉 우리를 우리의 자아로, 우리의 경계들과 정체성들로 다시 돌려보내지 않는 저항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저항은 "세계의 그리고 세계에 대한 근본적 개방성, 고립에 반 대되는 세계를 위한 어떤 심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바 그 자체로 행성적 기획인 탈식민화"의 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원의 무제한적인 채굴과 구조적 인종차별에 대한 행성적 저 항은 우리를 다시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달리 말해, 마치 처음 인 것처럼 '심호흡'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도래 할 것이다. 숨 쉬는 것을 어떻게 바라는지를 이미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팬데믹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맘 껏 깊이 숨을 쉬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 주디스 버틀러(김응산 옮김), 지금은 어떤 세계인가, 창비, 2023, p.18.

 

 

비극적인 것은, 슬픔의 원인인 대상에 대해 알고 그것을 명명할 수 있는 슬픔과 같지 않다. 우리가 비극적인 비통함에 대해 말할 때, 셀러의 시각 에 따르자면, 그것은 "어떤 확실한 평정 상태" 혹은 평온함의 감각을 "포함한다". 또한 중요한 점은 그것은 세계의 지평 너머로 확장된다는 것인데, 이는 후설의 철학과는 결을 달리하는 논설이다. 비극적인 것은 우리 자신의 행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셸러의 표현에 따르자면 외부에서부터 도래한 어떤 것의 결과 이자 그로써 정신에 침투하는 것이다. 비극적인 것이 심지어 사건들, 즉 비극적 사건들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에 의해 촉발 될 때조차 비극적인 것은 결코 그 원인인 사건으로 환원될 수 없다. 비극적인 것은 오히려 가치의 철저하고도 불가피한 파 괴가 일어나는 일종의 기운(gcistige Amosphicre)으로서 존속 한다. 이렇듯 비록 비극적인 사건이 비극적인 것의 원인일지 라도 그 이상의 어떤 것. 즉 한데 모여 세계의 구조"를 구성하는 일련의 요소들이 드러난다. 셀러는 이러한 요소들이 "그와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쓴다? 달리 말해, 사건이 세계 에 관한 무엇인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사건은 그 원인이지만 세계는 동시에 그 조건이자 현상 그 자체이다: "비극적인 것은 언제나 개인적인 것, 단수적인 것의 문제이지만 그와 동시에 세계의 구성 자체(eine Konstitution der Welt selbst)에도 관계 되어 있다."

 

- ibid., pp.43-44.

 

 

이미 격렬 하게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 그리고 이 세계는 어떻게 상호의 존성, 상호 엮임, 그리고 신체의 침투성에 대해 반추해볼 수 있 는 기회를 제공하는가? 더 나아가, 이와 같이 감각 경험을 조직 하는 개념들, 견해들, 혹은 방식들은 우리에게 사회적 평등과 불평등을 이해할 새로운 방식을 제공해주는가? 내 생각인즉 사회성과 생존 적합성이라는 중첩되면서도 까다로운 이해들 이 우리의 주요한 정치 개념들 중 몇몇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 다. 우리가 전에는 몰랐을지라도 이제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 가 그 질문 속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며, 그 질문은 어느 정도는 학술적 탐구와 일상적 경험 모두를 아우르는 기존 의 지평들을 넘어서 어떤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 ibid., p.60.

 

 

타자들은 나보다 앞서 존재 하며, 어느 정도는 나를 이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존 재가 보여주는 초기 효과들, 말하자면 사랑의 침범 작용은 결국 '나라고 스스로를 지칭하게 될 이 사람을 형성하기 시작한 다. 때문에 '나'는 타자들의 지지와 그들과의 동행이 없이는 삶의 과정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살아 있는 생물들이 의존하고 있고 필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기제들을 통 하지 않고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타자들의 욕망과 행동들, 그들이 나를 다루거나 무시하는 방식들은 기쁨과 고통을 가져 오고, 때론 상실에 고통받게 하며, 상실에 대한 회복을 갈망하 게 하는 일종의 세속적인 결속을 만들어내면서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에게 형태를 부여하며 나를 욕망이 있고 행동할 수 있 는 사람으로서 각인하고 확립한다. 나는 만져지지 않고, 다루 어지지 않고, 유지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나는 그러 한 실천들의 도가니 속에서 형성되지 않고서는 만지거나 다루 거나 유지할 수 없다. 그리하여 접촉의 환경들이 상실될 때, 받 아들이고 행동하기 위한 능력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겹겹이 쌓여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우리를 지탱하는 것에 대 한 근본적인 감각 또한 상실된다. 

 

- ibid., p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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