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유물론은 세계의 필멸성(mortality)과 모든 생명과 존 재의 과도적 성격을 강조했다.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들은 '어떠한 것도 무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noching comes from nothing)와 어떠한 것 도 파괴되었다고 무로 되돌아 갈 수 없다'(nothing being destroyed can be re-duced th nothing)는 점이었다. 모든 물질적 존재는 상호의존하고 원자로부 터 생겨났으며, 새로운 실재들을 만들어내는 끝이 없는 경로들 속에서 조직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에피쿠로스 유물론의 깊이는 다음의 사실 에서 드러난다. 이 철학 안에서 - 그리고 원자라는 개념 자체에서 -"자 연의 죽음은 그것의 불멸하는 본질이 되었고 루크레티우스가 정확히 외 친 것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불멸은 그의 필멸하는 생명을 앗아간다." 15 그러므로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을 필요로 하 지 않는다. 오히려 강조점은 자연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배열 의 변화에 있으며, 이것은 필멸하는 것이자 과도적인 것으로 이해된다(죽음의 불멸성(mors immortalis).
- 존 벨라미 포스터(김민정, 황정규 옮김), <마르크스의 생태학>, 인간사랑, 2016(2010), p.33.
이탈리아 지리학자 마시모 이니(Masimo Quaini)가 설명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 근대 부르주아적 생태의식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자연의 약탈을 비난했다 24 처음부터 인간 의 노동 소외에 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인간의 자연 소외를 이해하는 것 과 연관되어 있었다. 역사적 설명을 필요로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 이중의 소외였다.
- ibid., p.41.
코드웰은 <환상과 현실>(1937)에서 "자연의 정복"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투쟁하는(즉 자유를 위한 인간의 투쟁) 과정에서, 인간 은 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일정한 상호관계들 속으로 들어간다. ...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자연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렇게 인간과 자연의 반사운동이 서로 상호침투하며, 사회라고 알려진 필연적이고 계속 발전해가는 관계들이 이것을 매개한다는 점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자연 속에 존재하는 필연성뿐 아니라 우리 자신, 따라서 사 회 속에 존재하는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활 동적인 주체• 객체 관계가 과학이다. 주관적으로 보면, 이것이 예술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과의 적극적인 결합 속에서 등장한 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단지 구체적 삶-개체들과 자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 안에 서 인간 개체가 노동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일 따름이다.
- ibid., p.47.
오늘날 우리에게 다윈의 분석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날 진화의 사실들을 부정하는 교육계 인사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중 매우 많은 사람이 진화에서 나오는 명백한 결론을 부정한다. 다시 말 하면 인간 역시 진화의 끈들로 연결되어 있고, 다른 수천 종들의 생명을 모두 통제하는 환경작용들의 영향에 받는다."
이 말 속에 담긴 보다 포괄적인 함의와 생태학적 사상의 발전에서 유물론이 갖는 전반적인 의의를 현대 생태학의 견지에서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배리 커머너(Barry Commoner)의 유명한 생태학의 네 가지 "단순 법칙 (informal laws)을 살펴보면 된다. 이 법칙들은 다음과 같 다. (1)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2) 모든 것은 어디론 가 가야만 한다. (3) 자연이 가장 잘 안다. (4) 어떠한 것도 무로부터 오지 않는다.
이 "단순 법칙" 중 앞의 두 법칙들과 마지막 법칙은 에피쿠로스의 물리학 원리들로 이어진다.
- ibid., p.51.
마르크스의 전체 논지는 원자의 직선운동에서 발생하는 '휘어짐' (swerve), 혹은 '편위'(declination)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데모크리토스의 철 학과 에피쿠로스의 철학의 차이였다. 마르크스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수정"을 "단지 자의적인 변덕"으로 등치시킨 것이 "오랫동안 정착된 편견"이었다고 논평했다. 오히려 에피쿠 로스의 '휘어짐'-사소한 일탈로서의 '휘어짐'-이 (우발성을 의미하는) 우 연의 영역을 만들고, 결국 결정론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만들었다.
루크레티우스가 쓴 것처럼, 이것이 세계 자체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 다. 그 외의 방식으로는 원자들이 서로 충돌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 ibid., p.136.
결국 소외는 자신의 노동 활동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자연을 변형 하는 인간의 적극적 역할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크스에 따르면, 이러한 소외는 "인간을 자신의 신체로부터, 자신의 외부 에 존재하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정신적 본질인 인간적 본질로부터 소 외시킨다." 무엇보다 이것은 항상 사회적 소외이다. "자기 자신과 자연으 로부터 인간의 자기 소외는 모두 인간이 다른 인간과 자기 자신, 자연 사이에 설정해놓은 관계 속에서 분명해진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의 노동 소외라는 관념을 최초로 발전시킨 인물이 바로 헤겔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관념론적 맥락에서 전개했 다. 이 속에서 소외는 단지 지적 노동의 소외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헤겔 은 인간의 실천적 활동이 자기 소외되는 것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뿐 아 니라 인간의 현실적 • 감각적 실존으로부터, 다시 말해 인간과 자연의 관 계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것의 토대라고 파악할 수 없었다.
- ibid., pp.174-175.
마르크 스가 자주 잘못 해석되곤 하던 유명한 경구적 문장인 "맷돌이 여러분의 사회에 봉 건 영주를 가져다주었다. 중기 제기가 사회에 산업 자본가를 가져다주었다."를 쓴 것이 바로 이 절에서였다. 이 말은 어떤 기술적 결정론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 히려 마르크스는 모든 사회적 관계들과 기술들, 관념들 자체가, 역사적 본성을 지닌 끊임없는 변화 과정의 일부이며, 따라서 영구불변의 원리들에 의거해 논의를 진행 하는 것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기계, 사회, 관념, 범주들에 대한 프루동의 몰역사적 파악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진정 변치 않은 사실은, 에 피쿠로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필멸성 자체였다.
- ibid., p.287. (각주66)
자본론」에서 제시한 발전된 정치 경제학에서, 마르크스는 노동과정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 인간이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과 자연 사이의 이러한 물질대사를 매개 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과정으로 규정하기 위해 물질대사'(meraboism, Srofnchoe) 개념을 사용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관계 및 도시와 농 촌의 적대적 분업의 결과로, 물질대사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 (epe rable nift)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 안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대사를 합리적 방식으로 규제"할 필요성이 제기되며,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능력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틀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정치 경제학의 세 가지 중요한 강조점에 대한 비판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 도록 만들었다.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의 세 가지 중요한 강조점은 다음 과 같다. 첫째로 직접 생산자로부터 잉여 생산물의 추출에 관한 분석, 둘째로 이와 관련된 자본주의 지대론, 셋째로 앞의 둘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무엇보다 도시와 농촌 사이, 그리고 인지구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물질대사 균열이라는 마르크스의 개념 은 마르크스가 역사가들이 때때로 당대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제2차 농 업혁명"이라고 불렀던 사건의 근원과 이와 관련된 농업 위기에 집중하 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그는 상당수의 현대 생태사상보다 앞서 환경 퇴 보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자본주의 농업에 대한 마르크스 의 비판은 분석적으로 다음의 두 단계를 거쳤다. (1) 맬서스와 리카도에 대한 비판(이 비판에서는 제임스 앤더슨의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제2차 농업혁명과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토양화학에 담긴 함의에 대한 고찰 (이것은 마르크스가 지구와의 지속할 수 있는 관계의 밑바탕에 있는 조건을 분석하게 했다)
- ibid., pp.306-307.
1860년대 초 『자본론」을 집필할 무렵, 마르크스는 리비히의 분석으 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자본론』 1권이 출판되기 1년 전인 1866년, 그는 엥겔스에게 3권에 들어갈 지대 비판을 발전시키면서 "나는 독일의 새로운 동화학, 특히 리비히와 쇤바인을 갈아엎어야 했네. 이것은 이 문 제에 관한 한 모든 경제학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하다네"라고 썼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자연과학 관점에서 부정적인 면, 즉 근대 농업의 파괴성을 부각시켰던 것이 리비히의 불멸의 공적 중 하 나이다”라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리비히를 주의 깊게 연구했다. 그는 과학노트에 리비히 의 저작에서 가져온 광범위한 발췌문을 남겼다. 리비히의 영향 하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토양 "착취"(약탈 측면에서 이것은 재생산의 수단을 유 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이다)에 대한 체계적 비판을 발전시켰다.
- ibid.,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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