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의 의미와 범위가 정치적인 것에서 경제적인 것으로 재정립되면서 정치권력은 그 둘 모두를 방행하는 적으로 취급받는다.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런 노골적인 적대감은 포용, 평등, 자유를 국민주권의 일부로 굳건하게 세운다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의 액속을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포용, 평등, 자유라는 용어는 경제 영역에 재배치되고 경제 용어로 재정립되어 각각 경쟁. 불평등, 시장의 방임으로 대체되어 인민주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압축적으로 묘사한, 신장주의 합리성이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장민주주의 이성과 민주적 상상력을 비워내는 공식이다.
- 웬디 브라운(배충효, 방진이 옮김), <민주주의 살해하기>, 내인생의책, 2015/2017, p.51.
푸코가 보기에 신자유주의는 데이비드 하비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자본 축적의 한계 때문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통치성에 닥친 위기 때문에 탄생했다.
- Ibid, p.73.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데모스, 즉 인민이 지배한다는 원칙 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인민 전체가 통치하며 권력을 공유하는 유일한 정치 형태이기는 하지만 소수가 아닌 다수에 의한 횡포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인민 전부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며 인민 각자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것이 최소한의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인민 지배를 실천하는 체제, 규정, 제도를 특정하지 않는다. 인민이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해야 할지, 혹은 직접 실행해야 할지, 또 인민이 기존 법질서에 (주권자로서) 우선해야 할지, 혹은 (주체로서) 복종해야 할지 그리고 공공재를 형성하고 배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해야 할지, 혹은 서로 가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약속만을 정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 지침도 제공하지 않는다.
- Ibid, pp.27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