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외국인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가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래, 국제 노동시장에서 한국의 지위는 노동송출국에서 노동 수입국으로 전환되었다. 코리안드림을 품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 노동자가 외면한 소위 3D업종 현장에 대체 투입되기 시작된 이래, 현재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는 약 4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노동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필요악인 셈이다.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자국민의 잠재적 노동력을 잠식한다는 점에서 위협적이지미나, 이주노동자가 제공하는 저임금의 노동력이 현실적으로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주노동자 문제의 최종 심급은 '민족'이나 '인종'이 아닌, '자본'이라고 하는 게 옳을 듯하다. 물론 자본의 논리 위에, 다시 민족과 인종, 국자, 젠더, 종교 등이 중첩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화되는 양상을 띈다. '이주노동자'의 속성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들'은 '우리' 안에 포함되기도 하고 '경계' 바깥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로 뭉뚱그려 표현되기 어려울 만큼 이 일반명사에는 여러 분할의 경계선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에 발화 주체가 어디에 위치하느냐, 발화 주체와 이주노동자가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들의 말이 엉뚱하게 들리거나 전혀 들리지 않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 정부의 외국인력 정책은 산업연수생제도(1991), 연수취업제(1994), 고용허가제(2004)로 변해 왔지만, 정부가 '단순기능인력 수입금지', '자국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라는 기본 방침을 고수한 채 이름만 바꾼 것이기에 여전히 이주노동자는 법제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0만 명이라는 통계수치에는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외국인 여성의 숫자가 포함되지 않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적 측면은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정재림(문학평론가), '우리'였다가, '우리'일 것이었다가, 결국 '그들'인 - 최근 문학(담론)에서 '이주노동자'가 재현되는 방식에 대한 단상, 작가와비평06: 타자/마이너리티/디아스포라, 여름언덕, 2006, pp.40-41.
'Memo 구절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주의 사회의 감춰진 네 가지 장소 by 낸시 프레이저 (0) | 2023.03.21 |
---|---|
공공미술 분석지표 두가지 (0) | 2023.02.17 |
기후위기 <2050 거주불능 지구> (0) | 2020.12.26 |
예술과 정치 (0) | 2020.10.26 |
일본군 '위안부' 증언의 시작 (0) | 2020.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