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돼서 각자 가난을 겪는 2021년의 은강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주눅이 들어있다. <난쏘공>이나 <괭이부리말> 시절까지도 가난이 그렇게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었다고, 김(중미) 작가는 기억한다. "가난이 청렴결백의 상징이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내가 하는 노동에 대한 자부심, 거짓 없이 몸을 놀려서 이만큼 먹고 산다는 떳떳함이 있었어요." 지금은 아니다. 가난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온갖 말에 다 '거지'를 붙여대는 말장난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다. 세상도 그러하고 가난한 이들 스스로도 내면화했다. "지금은 가난에 대해 입에 담는 걸 힘들어해요. 부끄러워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더 깊이 느껴요. 자기 탓이 아닌데도 가난을 수치스러워하고, 목소리가 더 잦아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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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세상은 둘러앉아 밥 먹는 난쟁이 가족의 집을 망치로 부수었고 2020년의 세상은 지우/강이/여울이가 사는 동네를 빈민체험 테마마을로 만들려 했다. 가난은 이제 혐오 아니면 상품화의 대상이 되었다. <곁에 있다는 것>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은강구청장의 '은강 빈민체험관' 추진 소동은 2015년경 인천시 만석동을 둘러싸고 실제 벌어졌던 일을 배경으로 했다. 마을 곳곳의 빈집을 빈민체험관 (후에 '쪽방체험관'으로 명칭을 바뀌었다)으로 만들고, 김중미 작가 생가터를 복원하고, 마을 곳곳을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으로 조성해 중국인 관광객이나 일본/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김 작가는 당시 마을 사람들과 이 계획을 막아내며 한쪽에서는 찌푸린 얼굴로 가난을 혐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해맑은 얼굴로 소비하고 관전하려 드는 세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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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은 가난 이야기임과 동시에 여성의 이야기다. 밤 11시 잔업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청소, 빨래에 다음 날 밥상까지 차려놓고 잠자리에 드는 고단한 엄마들의 일기장 속에서는 김 작가는 가난과 여성의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그걸 끄집어내 들어주고 해설해줄 때 위로가 되는 모습을 김 작가는 종종 목격했다. (...) 야만적인 시절을 다소 지난 2021년의 많은 엄마와 딸들도 여전히 가난 위에 여성의 문제가 얹힌 두 겹의 불행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그 불행들을 서로 삭여주고 덜어주는 '연대'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들도 가난한 여성들이다.
- 변진경 기자 <가난을 혐오하는 시대, 가난의 '곁에 있다는 것'>, 시사인 vol.711 (2021.5.4), pp.24-25
홀로 끌어안는 가난은 점점 '나의 잘못'으로 쪼그라들었다. 1990년 한국갤럽이 국민 1500명에게 물었다. "주변을 볼 때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은 그 자신들의 노력 부족 때문에 가난한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노력해도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가난한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38%가 전자를, 52%가 후자를 선택했다. 가난의 탓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2017년 한국갤럽이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번에는 37%가 개인의 잘못으로, 40%가 환경(사회)의 잘못으로 가난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둘 사이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두 요인 모두 비슷하다"(22%)가 늘어난 점까지 고려하면,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빛은 확실히 더 차가워졌다. 오늘날의 한국은 "스스로 노력이 부족해서" "개인적 책임감이 모자라서" 가난해졌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 변진경 기자 <절망보다 무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 희망>, 시사인 vol.711 (2021.5.4),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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