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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pisces 삶의 기록/사라지지 않는 1들

00. 들어가며

by MIA_LeeQ 2019. 11. 4.

내가 처음으로 내 삶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 짤막하지만 연속적인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정확히 5분 전 광주 ACC가 마주 보이는 스타벅스 2층에서 였다. 해가 들어오는 유리창 너머로 구전남도청의 건물과 그 뒤 광주독립영화관의 트라이비전이 조용히 돌아가는 풍경 안에서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을 읽으며 결심했는데, 이 책을 발견한 것도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 였다. 광주에 내려오면 일종의 방앗간처럼 들리곤 하는 광주극장에 어젯밤 코헨 형제의 영화를 보러 가서 아트샵 코너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이 책은 사회학자 노명우 선생님의 서평이 커버에 있었다. 마침 최근 한 프로젝트를 꾸리며 만나고 있는 이 사회학자의 관점에 대해 관심이 대단히 많던 찰나, 그가 추천하는 책이라니!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날 밤 영화관람 이후는 이 책과 함께 하리라. 

   이 책을 고른 또 하나의 기준은 저자 기시 마사히코가 오키나와 주민의 삶에 대해 연구했다는 점이다. 올해 봄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우 강렬한 경험을 했던 오키나와의 한 섬에서 언젠가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오키나와에 관해 조금씩 정보를 쌓아가려는 나에게 이 특정 단어가 보였달까. 저자의 시각이 어쩌면 이 예술프로젝트가 말하는 개인에의 미시적인 애정과 관심이라는 점에서 닿아있다고 생각했고, 향후에는 저자를 만나서 단편적인 인간의 생에 대해 연구하는 그에게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면 어떠할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가능할지도 모르지. 여러모로 모든 것이 우연성을 기반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네 인생에 대해 아주 짧게 생각해본다.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들여다본다 한들,

자기 안에는 대단한 것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다.

단지 거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긁어모은 단편적인 허드레가

각각 연관성도 없고 필연성도 없이, 또는 의미조차 없이,

소리 없이 굴러다닐 뿐이다."

 

 

어젯밤 이 이름모를 우연성으로 연결된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울컥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이리도 다들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는 걸까.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단일한 전체로서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평생을 바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은 대단한 것도 없고 연관성이나 필연성 없이, 의미없는 단편들이 그저 모여 있을 뿐이라는 그의 문장에서,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이 결코 허무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오히려 그러기에 생을 살면서 지나치는 단편적인 것들에, 약한 의미의 연결고리에 더욱 집중해보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런지.

   그래서 말인데, 안에서 말고 밖에서, 다른 존재들과의 단편적인 만남과 스쳐감에서 나의 생과 내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특히 나에게는 그런 존재들이 늘 있어왔고, 그간 내 생에서 크고 작은 영감을 준 인물들이 있었다. 죽고, 사라지고, 연락을 끊고, 연락처 조차 모르는 그들과 나는 그 당시 그 곳에서 어떤 교감을 했을까. 때로는 그들의 존재에서 너무 가녀린 내 자아의 일부를 보았고, 때로는 그들의 아름다운 영혼에 감탄했으며,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라던, 혹은 가까워지기가 두려워 내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단편들을 하나씩 끄짚어내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이 글의 기획이 시작되었다.  

 

 

1. 빨간가방 아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2. 쌍화차 다방 이모 '해바라기씨는 수북이'

3. 아르헨티나 서커스단원 '세상의 시작점에서 물구나무'

4. 조명 디자이너 '일주일간 뒹굴기'

5. 물류 배달 청년 '내 생일은...' 

6. 기타 치는 소녀 '헤어진 이유'

7. 프리스비 직원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8. 머리가 벗어진 토마 아저씨 '호텔 구석에서의 대화'

9. 뜨개 공방 원장 '너는 고집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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