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으로서 당연히 여성의 여권신장에 대해 옹호하고 그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즘 논리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이 늘 있다. 특히 최근 숙대에서 트렌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하고 결국 입학을 취소하게 만든 페미니즘은 왜 내가 이러한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 구독 중인 저널에서 한 기고가의 글이 내 생각을 잘 반영해주었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으로 시작하지만, 세계에 만연한 소수자들의 인권으로 지평을 넓혀야 하고, 가부장적 시각이 지닌 혐오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모두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정과 권리를 누려야 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2020년에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려 한다.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터 여성이 결국 입학을 포기하게 만든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였다. 그러는 사이 누가 여성인가, 그 여성은 누구에 의해,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가, 그것은 당연한가 등 깊고 논쟁적인 질문은 생략되었다. 나를 수용한. 내가 경험한 페미니즘은 더 넓고 유연한 세계이자 늘 변화하며 진화하는 유기체였는데, '어떤' 페미니즘은 그러길 거부했다.
최근 '여성 정치'를 표방하며 창당한 정당은 그릇 모영의 로고를 발표했다.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과 나은 내일을 향한 열린 터"를 의미한다. 정치 영역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 터에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존재는 배제된다면, 그 그릇이 작아서 다양한 의제를 담아낼 수 없다면 그 정치는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여성 정치는 여성만을 '위한' 정치에 갇히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정치여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나에게서 출발하여 더 다양한 존재를 만나고,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부당한 세계를 종식하고자 연대하며,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유기체여여 한다.
- 오수경(자유기고가), <페미니즘 그릇을 축소하는 여성들>, 시사인 202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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