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철학
도구와 기계의 차이를 강조했던 사람이 《자본론》을 저 술한 카를 마르크스였다. 그는 장인의 도구가 장인의 노동을 도 와주고 인간과 노동을 더 통합한 데 비해, 노동자의 기계는 기계 의 작동에 인간의 노동을 맞춤으로써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으부터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가 기계가 아닌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 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는 자본주의하에서 기계는 노동자의 행복이나 복지가 아니라, 자 본가를 배불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사례들을 발굴해 제시했다.
마르크스는 젊은 시절 산업혁명을 목도한 뒤 기술의 급격한 변 화와 이에 수반되는 생산력의 발전을 예의 주시했다. 그는 30세 때 저술한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기술의 발 전을 격앙된 어조로 묘사했다.
부르주아지는 100년도 채 안 되는 자신들의 지배 기간 동안 과거의 모든 세대가 이룩해냈던 것보다 더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생산력을 창 조해냈다. 인간의 자연력에 대한 정복, 기계 장치, 화학의 농업과 공업 에 대한 응용, 증기선을 이용한 항해, 철도, 전신, 대륙 전체에 대한 개 간, 하천을 관통하는 운하, 땅에서 갑자기 솟아나듯이 불어난 인구. 이 런 생산력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이전의 어느 세기가 알아차렸을까?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저절로 사회의 발전 을 가져온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기술과 그에 기반을 둔 생산력의 발전이 인류 문명의 진보보다는 자본가들의 생산과 상 업 체계의 확장, 즉 자본가들의 이윤 축적에 훨씬 더 크게 기여했 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보는 마치 겉으로 보기에 대중을 위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몇 자본가들의 자본 축적을 돕는다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에 의하면 기술 발전은 소수 자본가들의 부 를 늘려줌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기술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 다. 첫 번째는 그가 도구와 기계를 구분하고, 전자를 긍정적으로 후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점이다. 이후 기술에 대해 논한 철학 자들은 마르크스와 비슷하게 전근대적인 도구와 근대적인 기술 을 구분했다. 두 번째로 마르크스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고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기술이 특정한 계급의 이익을 낳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중립적으로 보이는 기술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이런 관점 역시 이후 기술철학자들에게 이어졌다.
- 홍성욱,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2019, pp.185-187.
기술철학과 관련해 하이데거는 도구가 인간의 노동을 더욱 풍 요롭게 한 데 반해 기술은 노동을 소외시켰다고 본 마르크스의 전통 위에 있었다. 하이데거 역시 장인을 세상과 연결해주는 장 인의 망치와 자동기계를 구분하면서 장인의 도구는 높게 평가했 지만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킨 기술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하이데거만큼이나 기술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의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도구와 기계에 대해 마르크 스나 하이데거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시몽동은 장인의 망치 같은 도구가 바로 그 특정한 노동과 합 치되는 형태로 발전하고 진화해서 그 장인 외에 다른 사람은 이 것을 가지고 노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에, 시몽동에 따르면 자동화된 기계는 초보자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이 사용하기 힘든 도구에 비해 산업혁명 이후에 발전한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 에 따르면 기계는 도구를 포함한 여러 부품이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인' 도구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 이었다.*
기계가 발전할수록 기계에는 수많은 부품이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배치되고, 인간은 이런 기계를 쉽게 사용함으로써 세상과 더 많은 관계를 맺게 된다. 자동차는 무수히 많은 부품의 조합으 로 이루어지는데, 자동차는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용도로 이용한 다. 자동차는 출퇴근을 비롯해 여행을 가거나, 아이를 학교에 데 려다주거나, 병원을 가거나, 멀리 사는 친척을 방문할 때에도 이 용된다. 자동차 기술은 20세기 이후 도시의 삶 자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는 수많은 사람은 물론 자연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기여했다. 시몽동에 따르면, 모 든 기술은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는데, 바로 이것이 기술의 본질이었다
- ibid., pp. 190-191.
라투르의 기술철학은 기술의 주인으로서 인간의 지위에 질문 을 던진다. 라투르에 따르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독자적으로 행 위하지 않는다. 기술과 관계를 맺으면서 인간의 동기, 목표, 행위 가 달라진다. 기술도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 방향과 그것 이 미치는 영향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도 변한다. 이렇게 바뀌는 인간-기술의 네트워크에 또 다른 기술과 또 다른 인간이 포섭된다.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예상치 않았던 결과가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우리는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지 기술의 주인도, 기술에 의해 지배 당하는 노예도 아닌 것이다.
- ibid., pp. 1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