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브라이도티가 자신을 '유목적 주체'라고 할 때, 그 말은 그녀가 단순히 이곳 저곳을 오가면 살아가는 주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층의 혹은 주체 위치들을 동시에 그리고 비위계적으로 점하고 있다는 의미다.
(...) 브라이도티에게 윤리적이 된다는 것은 고통, 상실, 부정적인 정념을 가로질러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유목적 윤리란 한편으로는 상처받고 상실하고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겪기 마련인 체념과 수동성을 넘어 나아가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차이를 가로질러 연대하는 친화성을 리좀적으로 증식하는 것이 된다.
(...)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은 '페미니스트 주체', '사이보그 주체', '유목적 주체', '앙코마우스', 혹은 '복제양 돌리'처럼 '개념적 인물(conceptual persona)', 즉 '형상화(figuration)'다. 이러한 형상화들은 단순히 메타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정학적/역사적 위치를 나타내고, 보편적인 주장이 아니라 복잡한 특이성을 나타내는 표지다.
(...) 포스트휴먼 조건에 대한 브라이도티의 탐색은 유럽 백인 남성을 이상적 모델로 하는 인간 개념과 종으로서 인간의 우월성을 가정하는 인간 개념 둘 다가 현대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전 지구적 경제 문제라는 이중의 압력으로 파열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기술과학적 포스트휴먼 조건이 인간과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질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에 대응해 브라이도티는 기존 인간 개념이 파열되는 포스트휴먼 조건의 공통분모를 생명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정에서 찾는다. 기술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주어진 것)과 문화(구성된 것)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그에 따라 자연과 문화를 범주적으로 구별하는 사회구성주의적 접근 대신 자연-문화 상호작용을 비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과학적 패러다임이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명 물질이 "자연/문화 연속체"로서 자기조직적이고 자기생성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일원론적 철학과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온 개념과 방법의 변형 그리고 정치적 실천의 변형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가정이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이론의 출발점이다.
- 이경란, '유목적 주체'에서 '포스트휴먼 주체'로,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여성해방과 페미니즘을 세속성과 세속주의와만 확고하게 동일시하기보다는 세소성과 그것이 휴머니즘과 해방 정치와 맺고 있는 관계가 하나의 서사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ibid., p.17.
브라이도티가 보여 주는 낙관성과 유보성의 균형은 "인간 중심적 주체 이후"를 전망하면서 기술적으로 매개된 세상을 위해 새롭고 정치적으로 윤리적인 행위성을 가진 대안적 주체성 양식을 긴급하게 발견해야 한다는 실천적 요청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브라이도티는 인간의 생명에 특권을 부여하기를 멈추고 모든 생명체를 단일하게 취급한다는 점에서 탈인간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현상이나 실천이 반드시 혹은 자동적으로 포스트휴머니즘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포스트휴먼 주체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강조한다. 늘 강조하듯 여기서도 핵심어는 '복잡성'이다.
- ibid., p.37.
과학의 발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장의 결합은 인간 종과 다른 종들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남자/여자, 백인/흑인, 인간/동물, 살아 있는/죽은, 중심/주변 등의 범주 분할선들을 지우고 범주들 각각 내부의 분할선도 지움으로써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혼종성과 횡단적 연계성이 그 자체로 기존의 권력 관계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러한 탈인간중심적 세계에서 인간은 생명과 생명 물질을 목표로 하는 전 지구적 통제와 상품화의 네트워크에 종속되고, 생명들은 자본의 '생명해적질(biopiracy)'로 오용되고 착취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해방하고 진보시키는 도구이기는커녕 인간적 가치를 위협하고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위기를 야기한다.
- ibid., p.39.
생명 자체의 역동적이고 자기조직적인 구조인 조에는 생성적인 생기성을 나타내며, 그것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던 종과 범주와 영역을 가로질러 재연결하는 횡단적 힘이다. 브라이도티는 이러한 조에 중심의 평등주의를 탈인간중심주의적 선회의 핵심으로 파악한다.
- ibid., p.41.
인간을 특권화하는 위계적 관계에서 벗어나는 탈인간중심주의적 선회는 주체에게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라고 요구한다. 이를 수행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브라이도티는 주체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에 비판적 거리를 두는 "낯설게 하기" 전략을 제안한다. 브라이도티 자신에게 "낯설게 하기"를 위한 개념적 준거틀은 '일원론'이다. 일원론은 결말이 열려 있고 상호관계적이며 다수의 타자들과 상호작용을 통한 되기의 흐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성된 포스트휴먼 주체는 지구행성적 차원을 획득하기 위해 인간중심주의의 경계와 보상적 휴머니즘의 경계 양자 모두를 넘어선다.
- ibid., p.57.
브라이도티는 탈인간중심주의가 일으키는 곤경의 중심에 기술의 문제가 있듯이, 포스트휴먼 주체성이라는 새로운 전망에도 기술적 매개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적으로, 기술에 대한 지나친 흥분을 저지하고 테크노 유토피아적 판타지에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몸을 가진 확장된 관계적 자아'라는 포스트휴먼 개념이다. 신체와 기술적 타자들 사이의 상호의존적 유대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몸을 경멸하면서 몸을 가진 자아의 유한한 물질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트랜스휴머니즘적 판타지를 피하려면 "접속에의 욕망" 수사를 "몸이 있다는 자부심"이라는 더 근본적인 유물론적 의식에 병치시키는 것이, 즉 내재성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브라이도티는 본다.
- ibid., p.58.
범주적 차이의 축들을 뒤흔드는 현대의 테크노문화의 힘이 개인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짝을 이룰 때, 차이와 권력의 불균형은 오히려 강화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범주의 경계가 흐려진 포스트휴먼 정치 풍경이 반드시 더 평등하거나 덜 인종주의적이거나 덜 이성애주의적이라고 가정하거나, 몸을 가진 포스트휴먼의 주체들이 성차화된 차이, 인종화된 차이 너머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무리 유혹적이어도 잘못된 가정이라고 브라이도티는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생명정치에 의한 통치의 기둥이었던 성차화, 인종화, 자연화 과정들은 폐기되기보다는 심하게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 브라이도티는 차이들을 나타내는 이전 체계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차이를 "중심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비본질적인 것"으로 재주장하는 일이 훨씬 더 긴급한 일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차이를 '비일자(not-one)'의 원리, 다시 말해 '차이화(differing)'로 재개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브라이도티는 차이화로서의 차이가 포스트휴먼 주체를 구성하고 그에 맞는 탈인간중심적 윤리와 설명책임 형식을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복잡한 상호관계 의 생기적 네트워크에서 우리를 복수의 타자들과 묶는 유대를 인정하게 되면, 우리가 단일함과 총체성을 지닌 일자(One-ness)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그 대신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우연한 만남들, 상호작용들, 정서적 변용과 욕망의 누를 수 없는 흐름들의 효과"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식하게 되면, 우리가 소위 '자아'라고 부르는 그 실체를 구성하는 다수의 그리고 외부의 타자들과의 관계가 무엇보 다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 ibid., pp.67-69.